의상을 입어라 Vesti la giubba

주황 작가의 세미나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프로젝트 갤러리
09.10, 1:00pm — 3:00pm

<의상을 입어라〉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여성의 노동과 감정노동에 주목하는 설치 작업이다. 작품 속의 여성들은 불특정 회사의 유니폼을 입고 오페라 ‘Vesti La giubba’ 에서처럼 관객, 소비자, 자본가를 대면한다. 주황은 정형화된 작업장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한 사진 작업을 통해 이런 상황을 재현한다.

이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근원적 불안정성에 관해 고찰해 본다. 시선의 교류가 사라진 노동자와 소비자의 관계 속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전면화된 노동의 왜곡과 소외에 관해, 노동/감정노동에 대해, 노동의 상품화에 대해 참가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작가와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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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altered landscape #3>, 2008

주황:      이곳은(위 사진) 강변북로로 한강대교 옆을 지나가는 곳에 있는, 공원이라고도 할 수 없는 조그마한 공터입니다. 운전하며 여기를 지나다닐 때 나무들이 시커멓게 먼지가 묻어있고 비쩍 말라 있어서 다 죽어있는 줄 알았어요. 어느 해 봄, 어느 시점이 되니까 연두색 물이 오르면서 새싹이 나오는 것을 봤습니다. 너무 섣불리 죽었다고 여기며 외면하고 바라보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강가로 내려가서 사진을 찍었어요. 그러면서 한강공원 주변을 찍게 되었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공원이나 하천의 산책로, 동네 야산이나 들판, 공터 등을 찍는 altered landscape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처음에는 이런 풍경을 ‘자연’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주로 아파트 단지나 한강, 하천 근처에 조성되어 있는 이런 공원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않고 어딘가 인공적인 느낌이 들어서였겠죠. 그런데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자연은 이런 ‘인위적으로 조성된’ 자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이런 (인위적으로 조성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데 나는 이런 자연을 왜 자연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그곳에 어떤 불편한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우선 70, 80년대 정부가 녹화사업, 도시정비 사업을 하려고 만들기 시작한 공원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원은 허름한 빈민촌을 철거하고 새롭게 생겨나는 신흥 중산층을 위해 만든 주택단지에 주로 만들어 졌고요. 듬성듬성 심어 놓은 어린 나무들, 생경한 아이들의 놀이터, 해 쨍쨍 날 때 그늘 하나 만들지 못하는 빈약하고 허술한,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공원들이었어요. 이런 공원들은 개발위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냥 인공물이고 그 안의 자연은 대상화됐다는 느낌이 있었던 거죠. 이 안에 부조화가 있고 어떤 간극이 있고, 불화가 있지 않은가. 이건 허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2006) 한국에 오랫만에 와서 그런지 이런 인공적으로 만든 풍경들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왜,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자연이든 인공물이든 혹은 인공자연이든 우리와 여기서 오랜 세월 같이 했다는 것과 같이 한 세월만큼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고 삶의 일부라고 생각되어졌고요.

altered landscape 작업을 하면서 이런 자연을 바라볼 때 부조화스러운 것들, 그 안에서 서로 충돌하는 간극 같은 것들을 너무 과대하게 해석할 필요도 없고 그런 것들이 없는 절대‘자연’만 찾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러한 부조화적인 측면을 과다하게 포장해서 스펙터클하게 만드는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접하는 일상의 현실과는 먼 것 같아요. 또한 너무 멀리서 바라보아 어떤 갈등적인 요소를 다 없애고 무마하는 것도, 그래서 그게 추상화되는 것도 우리가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아닐 거고요.

이 작업을 하며 대상과 내가 바라보는 거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가깝게 가지도 않고, 너무 멀리서 보지도 않고요. 그것은 카메라와 대상의 물리적인 거리감도 있지만, 대상과 작가, 작가와 카메라, 카메라와 대상을 각각의 주체로 인식하는데서 생기는 거리감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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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in the park #5>, 2008

주황:      이런 공원들을 배회하다가 그 공간을 같이 배회하는 청소년/청년들을 만나게 됐어요. 제가 이 사진 (in the park #5)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보통 이런 친구들을 보면 제 소개를 간단하게 해요. 사진 작업하는 작가인데 사진을 찍고 싶은데 괜찮겠냐 물으면 괜찮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부끄러워서 싫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두 여학생은 소풍에 늦었는데도 찍겠다고 흔쾌히, 적극적으로 촬영에 응해 주었습니다. (웃음) .

저는 인물 촬영을 할 때 특별한 디렉션 같은 것은 안하고 사진 찍히는 분들이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을 드립니다. 마치 사진관에서 사진 찍을 때처럼  “자, 사진 찍습니다. 네, 여기 보시고…하나, 둘, 셋.” 이 사진의 경우엔 제가  하나, 둘, 셋! 하는 순간, 왼쪽 소녀가 오른쪽 소녀의 어깨에 손을 딱 얹는 거예요. 그건 제가 차마 기대하지 못했던…(웃음) 아름다운 순간이었어요.

저는 한국에서 청소년이라는 것, 청년이라는 것을 주변부적인 삶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자기 인생에, 뭘 할 것인지에 대해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없잖아요. 부모님의 결정, 학교, 공부…. 이 풍경들도 무척 주변적이잖아요. 이렇게 사람들이 찾지 않는,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런 풍경 속에 이들이 있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굉장히 힘이 있게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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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의상을 입어라〉, 2016

주황:      오랫동안 뉴욕에서 살다가 서울에 돌아와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산업구조가 생산노동에서 서비스업 노동으로 많이 전이 되었고 특히 여성에게는 감정노동의 압박이 엄청난 강도로 요구 되고 있다는 거였어요. 여성들이 병원이나, 공항, 마트, 편의점 같은 곳의 푸르스름하고 플랫한 조명 아래 특정 회사의 유니폼 내지는 유니폼스러운 옷을 입고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받으며 일하는 모습은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와 닿았습니다. 왜 이 사회는 여성에게 이렇게 과도한 서비스를 원할까? 서비스가 필요 없는 전문 직업에서조차 굉장히 친절해야 하고…저는 이러한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분위기에 불편함을 느꼈고, 일하시는 분들은 필요 이상 요구되는 서비스에 피곤함을 느끼며 서로의 시선을 피하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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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윤:       오늘 작가님과 타자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과연 여성과 남성으로 요약될 수 있는가. 자본가와 비자본가로 나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다른 요소들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있어요.
남성으로서 느끼는 다른 식의 타자화가 또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사회가 한 개인에게 남성적인 것을 기대하는 것이죠.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지 않고 그 중간에 굉장히 다양한 성과 정체성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무시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죠. 그런 지점에 있어서 작가님의 시선도 궁금하고 우리 다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주황:      제가 여성에 대한 작업을 많이 하는 것은 일단 제가 여성이어서 아마 더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작업을 진행하는 것의 수월함도 있고요. 주변에 여성이 많고, 이런 문제에 서로 많이 공감하니까요. 그런데 이건 여성만의 문제는 절대 아니죠. 어떤 사회에 속해 있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에 따라 계급,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의 문제로 갈 수도 있는 거고요. 제가 이 작업을 하게 된 것은  미국에 있을 때 아시안 여성으로서의 타자화된 정체성이 저에게 중요한 이슈 이었던 것이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남녀문제나 계급문제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결국에 이런 사회문제는 우리 서로를 타자화 시키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성분들은 섭외하기가 어려워요. 사진 찍자고 하면(웃음) “왜요? 뭐하시려고요?” 그러시고.  ‘아, 저걸(불편하게 여기는 지점) 어떻게 잘 찍으면 정말 재미있는 작업이 될 텐데…’하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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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그리고 제가 뉴욕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90년대 초중반) 많은 흑인, 여성, 3세계작가들이 좋은 작업을 가지고 미술계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계급,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문제를 다뤘거든요. 정치적이지만 작업적으로 훌륭했고 미술 내외적으로 많은 공감을 얻었지요. 저는 그런 작업들이 미국 사회를 굉장히 많이 바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든 작가가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더 많은 작가가 우리가 사는 현재에 대해 좀 더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런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의 피곤함도 있습니다.

최태윤:     (웃음) 사회활동이자 예술로서 동시에 진행하고 계신 것 같아요. 이런 작업이 상업화랑에서 보여지고, 비엔날레에서 보여지고, 어떤 담론을 만들면서 하나의 기록으로 남겨지는 거죠. 제가 보기에는 96년 작업, 2006년 작업, 그리고 지금 2016년의 작업. 이렇게 10년 단위로 같은 이야기가 다른 식으로 나오는 것도 하나의 역사적 기록물이고 문화의 파편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사: 주황
진행: 최태윤
수화 통역: 임정애, 강현주
문자 통역: 이시은
편집: 김보라, 최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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