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언어’의 공존, 이해와 온기(溫氣)가 있던, 불완전한 사람들의 학교

원희윤

2016년 9월, 우연히, 어쩌면 필연적으로<불확실한 학교>를 만났다. <불확실한 학교>는 <2016년 SeMA미디어시티서울>의 여름캠프와 전시 중 하나였다. <불확실한 학교> 전시 서문 중 일부이다.

<불확실한 학교>는 지난 여름 두 달간 작가, 창작자, 예술 교육자, 활동가, 사회 복지사를 참가자로 초대해 총 15회의 워크숍과 공개 세미나를 진행했다. 서로 다른 감각과 언어를 사용하는 개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일시적이고 자율적인 배움의 공동체를 이뤘다.

또한 우리는 주류의 소통방식을 질문하며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대화를 시도했다. 참가자 고유의 필요사항을 고려하고 해설보다는 통역에 집중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글은 질감을 띄고, 단단한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언어가 된다. 우리가 발견한 이 대화의 방식은 공동체 안의 다양성을 발현시키고 개인의 존엄성을 지탱해주는 구조다. 이와 같은 대화가 예외적인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당연한 삶의 조건이 될 때, 우리는 각자가 가진 편견을 탈학습하고 타인에게 사려 깊은 손을 내밀 수 있게 될 것이다.

“상호의존”은 우리의 불완전한 고유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포용할 가능성에 관한 전시이다. 또한, 불확실한 학교 강사와 참가자, 협력 작가들이 서로에게 보여준 ‘급진적 호혜’를 관람객과 나누는 자리이다. 상호의존의 잠재력은 각자가 혼자였을 때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공동의 역량으로 가능해지는 데에 있다.

전시 서문에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불확실한 학교>는 ‘상호의존’이라는 주제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두 달간의 세미나와 그 후에 세미나 참여자들의 작품이 약 세 달간 전시한 것을 말한다. <불확실한 학교>는 음성언어, 시각언어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언어가 공존하고 의존하며 서로를 이해하며 알아가는 시간이자 장소였다. 그렇기에 ‘상호의존’은 <불확실한 학교>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실현되는 곳이었다.

이 글은 필자가 <불확실한 학교> 전시지킴이로서 후반의 세미나에 참여하고, 또 전시지킴이로서 관람객을 만나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적은 글이다.

세미나가 진행 중인 모습

<불확실한 학교>를 만나다.

처음 <불확실한 학교>를 만났을 때, 사라 헨드렌과 엘리스 셰퍼드의 세미나가 진행 중이었다.이 날 세미나를 끝까지 참석하지 못했지만, 들었던 내용 중에 인상 깊게 남은 말이 있다.

“장애인이 너무 수동적인 존재로 보여진다. 나는 이것을 탈피하고 싶었다.”

 

일상에서 많이 보는 장애인 표기

사라 헨드렌의 장애인 표기

 

일상의 장애인 표기 그림은 너무나 경직되어 있어 무력하게 보인다. 그럼으로 장애인은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보인다. 하지만 셰퍼드가 제안하는 장애인 표기는 역동적이며 활력이 있어 보인다. 그럼으로 장애인은 한 명의 사람, 즉 주체로서 보인다. 이처럼 표기의 방식은, 보이는 방식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반영물로써 아주 중요하다.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작은 부분도 사실은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그 사소한 부분까지도 어떤 시각의 반영이고, 편견이 스며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 하나, 표시그림 하나가 그 사람 혹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반영이겠구나. 그럼으로 단어 하나, 그림 하나를 사용하는 것도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불확실한 학교>를 만나다.
– 이해와 배려, 온기가 있었던 시간.

두 번째로 만난 <불확실한 학교>을 만났다. 이 날의 세미나는 전시 참여 작가들의 작품 소개, 그리고 이길보라 감독님의 영상제작 방법에 관한 설명을 끝으로 세미나가 끝났다. 그리고 뒤풀이 자리가 있었다.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아주 괜찮은 날씨였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그리고 가로등 조명 아래의 미술관 앞 공원은 뒤풀이 자리가 되었다.

사실 나는 전시 참여 작가도 아니고, 직접적인 관계자도 아니었기에,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 그리고 이렇게 뒤풀이 자리까지 참여하는 것이 참 어색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더욱이,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더욱 그러했다.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뒤풀이자리까지 계속 있게 되었다.

다음의 뒤풀이 자리 중 나누었던 대화의 일부이다.

M: 개인과 개인이 존재하지만, 개인은 관계가 없으면 살 수가 없어요. 외롭고, 지치잖아요.. 최근에 알았어요, 저도..

B: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낄 때 보다 같이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는 게 더 힘든 거 같아요.

M: 어떤 선생님이 그랬는데, 사람들 안에 고독이 있다.

사람들이 내 앞에 많지만 내 정작 내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없는 거예요. 고독이지 뭐.

(정적)

B: 제가 움직임 수업을 들었는데, 신기하다고 생각했던게 몸을 부딪히거나 만지지 않고, 서로의 기운을 느끼는 거에요. 그런데 지하철 안에 만원이었는데, 신체가 접촉되어 있는데도 사람같이 안 느껴지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와글와글)

M: 만세 우린 불완전하다 만세 솔직히 여기에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진짜 불완전한 거 같아.

뒤풀이 자리, 대화 감상중인 모습

위의 사진에서처럼, ‘대화(감상)’했으며, ‘타이핑으로 대화하는 술자리’였다. 그리고 이 대화의 자리는 즐겁고 유쾌했으며, 따뜻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 자리는 하나의 그림으로 남았다.

<불확실한 학교> 전시 중 이유진 작가의 작품 일부

인간관계에 대해, 그리고 고독의 재정의, 사람의 존재와 불완전함, 이런 대화를 나눌 곳이 없었던 나는, 이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이 자리가 정말 좋았다.

‘인간’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표기하면 ‘人間’(사람인, 사이간) 즉, ‘사람 사이’란 의미이다. ‘사람 사이’, 즉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 나라는 사람의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에, 사람에게 인간관계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사람과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없을 때 그것은 인간관계 속에 있다고 해도, 관계를 속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그저 고독할 뿐이다. ‘고독’을 한자로 표기하면, ‘孤獨’(외로울 고, 홀로 독)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쓸쓸하고 외롭고 쓸쓸함’이란 의미이다. ‘고독’이라고 하면 흔히 사람의 쓸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일차원적인 고독의 의미 말고,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인간관계,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면 또 다른 의미의 고독은 어느 곳에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고, 나눌 수도 없었는데, 이 곳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또한 참여 작가 중 한 분이 ‘불확실한 학교’를 ‘불완전한 학교’라고 잘못 알고 계셔서 실수로 그렇게 부르셨다. 그 후로는 ‘불확실한’보다는 ‘불완전’이라 계속 부르셨다. 아주 즐거운 농담이었다. 당시에는 즐거운 농담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불완전’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완전’하기에 사람들이 모이고, ‘관계’가 생기며, ‘상호의존’을 하는 것이 아닐까?

처음 뒤풀이 자리에 참여했을 때는 ‘조금만 있다 가야지’ 생각했었는데, 뒤풀이 자리가 편하고, 따뜻하고 좋아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계속 있었다. 결국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집에 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사람들과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구나.’ 또한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의 불편은 불편만큼의 마음과 정성을 가지면, 그 불편은 충분히 불편하지 않은 일이 된다. 그러나 비장애인은 그만큼의 마음과 정성을 갖지 않아 냉담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불확실한 학교>, 장애를 말해야 하는가?
– 장애인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

“전시 서문에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넣어야 할까요?”

이 질문에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특정한 시각이 있음을 함의한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그 관점은 은 아마 ‘영웅’과 ‘무능’이 아닐까? 비장애인이 바라보는 장애인은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 아니면, ‘도와주어야 할’ 대상이다. 이런 이중적 시선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장애를 지니고, 무엇인가 가시적인, 눈에 띌만한 성과를 이루어내면, 너무나 쉽게, ‘장애를 극복했다’고 단정 짓고, 마치 ‘영웅’처럼 치켜세운다. 하지만, 장애인의 ‘장애’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은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이라는, 극복은 ‘악조건이나 고생 따위를 이겨 내다’ 또는 ‘적을 굴복시키다’의 의미이다. 이와같은 사전적 정의를 보면, 이 두 단어가 서로 충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장애인에게 장애는 평생 갖고 있는 것인데, 이런 ‘제약’을 ‘이겨내고’, ‘굴복시켰다’는 것이다. 평생 안고 있는 ‘제약’을 어떤 것을 무엇인가를 성취했다고 ‘이겨내고’, ‘굴복시켰다’고 보는 것은 너무 큰 비약이 아닌가? 이와 반대로, ‘무능’의 시각이 있다. 장애인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여기고, 장애인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도와주려고 한다. 이런 행동의 기저(基底)에는 ’선행(善行)‘을 하고 있다는 도취감과 더불어 장애인을 ’시혜적 대상‘ 보는 시각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이중적 관점은 결국 장애인이 ‘주체’로서의 존재와 그 자리 잃는다.

위의 질문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또한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넣어야 한다, 넣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장애인에게 장애는 하나의 정체성입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존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제가 느끼는 건데, 작가는 작가로서 존재하는 대로 충실히 작업하면 된다고 봐요. 얼마 전에 큐레이터들도 만났는데 장애인 예술 그런 거 없대요. 그냥 그림, 그냥 사진이라고요.”

사실 위의 두 이야기 중 무엇이 더 ‘맞다, 틀리다’고 비교하고 평가할 수 없다. 그냥 두 이야기, 그 자체가 의미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에게 장애는 평생을 갖고 살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장애인에게 장애는 자신의 여러 정체성 중 하나이다. 작가를 소개할 때, ‘장애인 작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두 이야기 모두 의미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전시서문에는 ‘장애’라는 말이 담기지 않았다.

<불확실한 학교>에 혼자 남아 있는 시간
– 다양한 시각의 교차, 절망과 희망 사이

전시장 지킴이를 하면서 나는 관람객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았다. 관람객들을 반응을 보며 절망하기도, 그래도 희망을 기대하기도 했다.

“장애인이 한 거래. 그냥 가자.”

어느 한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오자마자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 없었나,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적지 않게 충격적이었다. 전시는 제대로 보지 않고, 단지 ‘장애’를 가진 작가들이 한 전시라는 이유로 그렇게 말하고, 판단하는 것에 정말 놀랐다. 하지만 그만큼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일부분을 본 것이라 생각한다. ‘장애’, 그 하나의 이유로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고, 외면하고 배제하는 것, 어쩌면 이 시각은 장애를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이 반증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따뜻한 시선도 보았다. 6-7세 된 아이와 어머님이 전시를 보러 온 경우가 있었다. 아이와 그 어머니가 전시장 내에 재생한 청각장애인에 관한 동영상을 보며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엄마, 청각장애인이 뭐야?”

“수아(가명)는 엄마 목소리가 들리지? 근데 청각장애인은 수아처럼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이야. 그래서 나중에 수아가 필요하면 도움을 주면 좋을 거 같아.”

사실 이 대화에서도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시혜의 대상’이라는 점이 한계점이기는 하다. 그러나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분리된 한국의 사회 및 교육 현실에서 이런 대화는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길거리에서도 장애인을 보기 힘든 곳이며, 높은 턱과 경사 등등 장애인의 이동 여권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또한 일반학교와 특수학교가 구분된 교육상황에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보거나 교류할 상황이 거의 없는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시장 내에 설치된 동영상을 통해 어린 아이에게 장애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그래도 조금의 희망을 기대해 보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불확실한 학교>를 말하다.
– 서로 다른 ‘언어’의 공존, 언어 장벽의 붕괴 그리고 주체로서 자리

<불확실한 학교>는 주류 ‘언어’에 의문을 던진다. 주류 ‘언어’란 ‘소리’, 즉 ‘음성언어’를 말한다. 하지만 언어는 꼭 ‘음성’이어야만 하는가? 언어는 손으로도 존재할 수 있고, 보는 것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언어가 공존했던 곳이 <불확실한 학교>의 세미나였고, 전시였다. 서로 다른 언어들이 존재했지만, 의사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더 나아가, 오히려 언어를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음성언어의 대화는 잘못 들음으로써, 또, 주변 환경에 따라 소리가 잘 들리기도 하고, 안 들리기도 하며, 대화에 오해가 생길 여지가 있다. 그래서 말한 이의 의도와 다르게 듣는 이에게 전달되어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불확실한 학교>에서 말을 소리로 듣기도, 보기도 하면서, 그런 오해를 줄일 수 있었다. 또한 서로 다른 언어를 하는 사람들 간에 소통의 창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언어들이 공존하면서 음성언어와 시각언어의 장단점을 서로 보완하여 주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언어가 상호의존하며 언어 간의 벽을 허문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불확실한 학교>는 장애인이 주체로서 있었던 곳이었다. <불확실한 학교>는 흔히 ‘장애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해.’,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을 도와주어야 해.’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부여되는 역할행동들에서 벗어난 곳이었다. 장애인은 한 사람의 주체로서 개인의 의견을 내고, 작품을 만들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을 맹목적으로 돕는 것이 아닌, 필요할 때 과정이 좀 더 잘 진행될 수 있는 정도로 역할을 하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각각의 주체의 한 명으로서 존재하였던 곳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가 공존하며, 각각의 언어가 서로 보완하였던 곳, 그리고 장애의 유무를 떠나 모두가 각각의 한 명의 주체로서 만났던 곳,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했던 곳, 그럼으로써 항상 온기(溫氣)로 가득했던 곳, 그곳이 <불확실한 학교>였다. 이제 이 온기의 씨앗이 또 다른 <불확실한 학교>로 계속 이어지고, 더불어 <불확실한 학교> 울타리를 넘어 더 많은 다양한 곳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그래서 어느 곳이든 장애의 유무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한 명의 주체로서 사람들 속에서 관계하며, 더불어 사는, 함께 사는 곳이 되길 희망한다.

협력 작가 라야의 <불확실한 학교 다큐멘터리> 장면 중 일부분

글쓴이: 원희윤. 좋은 문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이며, 그 일환으로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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