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

불확실한 학교 다큐멘터리

불확실한 학교 다큐멘터리

연출
라야

촬영
라야, 조용기

음악
Steven Gutheinz – The Arrival
Dario Lupo – Everything is moving but not the sky
(licensed by MUSICBED)

Uncertainty School Documentary

Director
Raya

Videography
Raya,  Yonggie Joe

Music
Steven Gutheinz – The Arrival
Dario Lupo – Everything is moving but not the sky
(licensed by MUSICBED)

 

 

 

스투키스튜디오 & 곽규섭: 코드 스터디

드로잉과 영상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는 곽규섭 작가는 <불확실한 학교>의 협력기관인 로사이드의 소개로 워크숍과 전시에 참여하셨습니다. 곽규섭 작가는 로사이드 날 것의 창작자로서 아트링크 활동을 하십니다.  “아트링크(Art-link)란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공동창작자(아트서포터)로, 로사이드가 발굴한 날것의 창작자와 연결하고, 예술 작업으로 교감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합니다.”—1:1아트링크 소개

곽규섭 작가는 2016년 8월 <불확실한 학교> 코드 워크숍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남다른 흥미를 보였고, 추가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불확실한 학교> 워크숍과 전시를 함께 준비하며 스투키 스튜디오의 정유미, 김태경 디자이너는 곽규섭 작가의 작품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스투키 스튜디오는 곽규섭 작가를 위한 코드스터디(Code study)를 로사이드에서 11월에 2회 진행했습니다.

스투키 스튜디오는 웹에서 사용자가 능동적인 정보 탐색이 가능하도록 정보를 가공하고 전달하는 방식을 탐구하고 관련 작업을 하고 있는 스튜디오로, <불확실한 학교> 협력 작가로서 워크숍에서 P5.js 수업 보조 및 HTML/CSS 부분의 교육을 담당하였습니다.

코드스터디의 목표 및 진행과정 등에 대한 설명, 예제 파일을 포함한 전체 포스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github.com/stuckyi/codestudy 포스팅 중 일부를 발췌해서 불확실한 학교 블로그에 소개합니다.

1차 스터디 후기

규섭씨가 흥미를 가질수 있을 지, 코드 패턴을 어느 정도로 이해할 지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진행된 1차 스터디였습니다. 우리가 예상한 것 보다 훨씬 더 흥미를 가지고 재밌어하고 이해를 잘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시는 모습을 보며 규섭씨가 코드의 패턴을 파악하는 것에 굉장히 능숙하며, 한번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오브젝트를 반복적으로 추가하는 것을 쉽게 한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규섭씨와 함께 다음 예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해보고 싶었는데 아직 그 단계까지는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일단 주어진 시간동안 우리는 규섭씨의 다양한 캐릭터를 살릴 수 있는 재밌는 예제를 소개해드리는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차 스터디 후기

곽규섭 창작자의 캐릭터 세계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다보니 기반이 되는 코드만 준비해 놓으면 이미지, 사운드, 더 추가할 요소 등의 상상력은 규섭씨에게 맡길 수 있었던 덕분에 콘텐츠의 기획 등에 있어서의 부담감 없이 코딩과 협업의 즐거움만 느끼게 될 수 있었습니다 click this link now.

예제에서 걸어다니고 점프를 하는 캐릭터가 튤립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규섭씨의 사진이었는데, 규섭씨가 그것에 대해 인지를 하고 코드가 실행되었을 때의 인사를 ‘안녕 튤립 잘부탁한다’라고 넣었습니다. 본인이 만든 세계와 캐릭터이니만큼 코드를 통해 만들어진 규섭씨의 캐릭터 세상에 대해 이해도가 높고 이미지나 사운드를 추가하고 확장함에 있어서 일관된 세계관과 규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앞으로 협업을 할 때 기획에 있어 큰 장점으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차 코드스터디와 마찬가지로 2차 코드스터디에서도 ‘코드를 잘 가르쳐주었고 잘 배웠다’, ‘앞으로도 규섭씨가 혼자 코딩을 지속할 수 있겠다’ 등의 가치 평가 지표 외에도 중요한 가치가 존재함을 느꼈습니다.

2회의 짧은 스터디였지만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더 곽규섭 창작자가 재밌어하고 계속 웃음을 보여주었고 매번 준비해온 과자를 직접 우리에게 먹여주고, 집에 가는 길에 우리를 기다려 주는 등 점점 친밀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rdlk4fg. 처음에 의사소통에 대해 걱정했던 것이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규섭씨와 서로 더 잘 알게되고 규섭씨가 사용하는 언어를 좀 더 이해하게 됨으로써 관계를 맺는 행복감을 느꼈고 코드 스터디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우리의 표정은 피곤함 대신 스터디 경험에 대한 즐거운 대화로 가득했습니다.

코드 스터디 전체 기록 https://github.com/stuckyi/codestudy

서로 다른 ‘언어’의 공존, 이해와 온기(溫氣)가 있던, 불완전한 사람들의 학교

원희윤

2016년 9월, 우연히, 어쩌면 필연적으로<불확실한 학교>를 만났다. <불확실한 학교>는 <2016년 SeMA미디어시티서울>의 여름캠프와 전시 중 하나였다. <불확실한 학교> 전시 서문 중 일부이다.

<불확실한 학교>는 지난 여름 두 달간 작가, 창작자, 예술 교육자, 활동가, 사회 복지사를 참가자로 초대해 총 15회의 워크숍과 공개 세미나를 진행했다. 서로 다른 감각과 언어를 사용하는 개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일시적이고 자율적인 배움의 공동체를 이뤘다.

또한 우리는 주류의 소통방식을 질문하며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대화를 시도했다. 참가자 고유의 필요사항을 고려하고 해설보다는 통역에 집중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글은 질감을 띄고, 단단한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언어가 된다. 우리가 발견한 이 대화의 방식은 공동체 안의 다양성을 발현시키고 개인의 존엄성을 지탱해주는 구조다. 이와 같은 대화가 예외적인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당연한 삶의 조건이 될 때, 우리는 각자가 가진 편견을 탈학습하고 타인에게 사려 깊은 손을 내밀 수 있게 될 것이다.

“상호의존”은 우리의 불완전한 고유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포용할 가능성에 관한 전시이다. 또한, 불확실한 학교 강사와 참가자, 협력 작가들이 서로에게 보여준 ‘급진적 호혜’를 관람객과 나누는 자리이다. 상호의존의 잠재력은 각자가 혼자였을 때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공동의 역량으로 가능해지는 데에 있다.

전시 서문에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불확실한 학교>는 ‘상호의존’이라는 주제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두 달간의 세미나와 그 후에 세미나 참여자들의 작품이 약 세 달간 전시한 것을 말한다. <불확실한 학교>는 음성언어, 시각언어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언어가 공존하고 의존하며 서로를 이해하며 알아가는 시간이자 장소였다. 그렇기에 ‘상호의존’은 <불확실한 학교>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실현되는 곳이었다.

이 글은 필자가 <불확실한 학교> 전시지킴이로서 후반의 세미나에 참여하고, 또 전시지킴이로서 관람객을 만나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적은 글이다.

세미나가 진행 중인 모습

<불확실한 학교>를 만나다.

처음 <불확실한 학교>를 만났을 때, 사라 헨드렌과 엘리스 셰퍼드의 세미나가 진행 중이었다.이 날 세미나를 끝까지 참석하지 못했지만, 들었던 내용 중에 인상 깊게 남은 말이 있다.

“장애인이 너무 수동적인 존재로 보여진다. 나는 이것을 탈피하고 싶었다.”

 

일상에서 많이 보는 장애인 표기

사라 헨드렌의 장애인 표기

 

일상의 장애인 표기 그림은 너무나 경직되어 있어 무력하게 보인다. 그럼으로 장애인은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보인다. 하지만 셰퍼드가 제안하는 장애인 표기는 역동적이며 활력이 있어 보인다. 그럼으로 장애인은 한 명의 사람, 즉 주체로서 보인다. 이처럼 표기의 방식은, 보이는 방식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반영물로써 아주 중요하다.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작은 부분도 사실은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그 사소한 부분까지도 어떤 시각의 반영이고, 편견이 스며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 하나, 표시그림 하나가 그 사람 혹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반영이겠구나. 그럼으로 단어 하나, 그림 하나를 사용하는 것도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불확실한 학교>를 만나다.
– 이해와 배려, 온기가 있었던 시간.

두 번째로 만난 <불확실한 학교>을 만났다. 이 날의 세미나는 전시 참여 작가들의 작품 소개, 그리고 이길보라 감독님의 영상제작 방법에 관한 설명을 끝으로 세미나가 끝났다. 그리고 뒤풀이 자리가 있었다.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아주 괜찮은 날씨였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그리고 가로등 조명 아래의 미술관 앞 공원은 뒤풀이 자리가 되었다.

사실 나는 전시 참여 작가도 아니고, 직접적인 관계자도 아니었기에,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 그리고 이렇게 뒤풀이 자리까지 참여하는 것이 참 어색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더욱이,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더욱 그러했다.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뒤풀이자리까지 계속 있게 되었다.

다음의 뒤풀이 자리 중 나누었던 대화의 일부이다.

M: 개인과 개인이 존재하지만, 개인은 관계가 없으면 살 수가 없어요. 외롭고, 지치잖아요.. 최근에 알았어요, 저도..

B: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낄 때 보다 같이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는 게 더 힘든 거 같아요.

M: 어떤 선생님이 그랬는데, 사람들 안에 고독이 있다.

사람들이 내 앞에 많지만 내 정작 내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없는 거예요. 고독이지 뭐.

(정적)

B: 제가 움직임 수업을 들었는데, 신기하다고 생각했던게 몸을 부딪히거나 만지지 않고, 서로의 기운을 느끼는 거에요. 그런데 지하철 안에 만원이었는데, 신체가 접촉되어 있는데도 사람같이 안 느껴지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와글와글)

M: 만세 우린 불완전하다 만세 솔직히 여기에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진짜 불완전한 거 같아.

뒤풀이 자리, 대화 감상중인 모습

위의 사진에서처럼, ‘대화(감상)’했으며, ‘타이핑으로 대화하는 술자리’였다. 그리고 이 대화의 자리는 즐겁고 유쾌했으며, 따뜻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 자리는 하나의 그림으로 남았다.

<불확실한 학교> 전시 중 이유진 작가의 작품 일부

인간관계에 대해, 그리고 고독의 재정의, 사람의 존재와 불완전함, 이런 대화를 나눌 곳이 없었던 나는, 이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이 자리가 정말 좋았다.

‘인간’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표기하면 ‘人間’(사람인, 사이간) 즉, ‘사람 사이’란 의미이다. ‘사람 사이’, 즉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 나라는 사람의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에, 사람에게 인간관계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사람과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없을 때 그것은 인간관계 속에 있다고 해도, 관계를 속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그저 고독할 뿐이다. ‘고독’을 한자로 표기하면, ‘孤獨’(외로울 고, 홀로 독)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쓸쓸하고 외롭고 쓸쓸함’이란 의미이다. ‘고독’이라고 하면 흔히 사람의 쓸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일차원적인 고독의 의미 말고,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인간관계,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면 또 다른 의미의 고독은 어느 곳에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고, 나눌 수도 없었는데, 이 곳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또한 참여 작가 중 한 분이 ‘불확실한 학교’를 ‘불완전한 학교’라고 잘못 알고 계셔서 실수로 그렇게 부르셨다. 그 후로는 ‘불확실한’보다는 ‘불완전’이라 계속 부르셨다. 아주 즐거운 농담이었다. 당시에는 즐거운 농담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불완전’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완전’하기에 사람들이 모이고, ‘관계’가 생기며, ‘상호의존’을 하는 것이 아닐까?

처음 뒤풀이 자리에 참여했을 때는 ‘조금만 있다 가야지’ 생각했었는데, 뒤풀이 자리가 편하고, 따뜻하고 좋아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계속 있었다. 결국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집에 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사람들과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구나.’ 또한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의 불편은 불편만큼의 마음과 정성을 가지면, 그 불편은 충분히 불편하지 않은 일이 된다. 그러나 비장애인은 그만큼의 마음과 정성을 갖지 않아 냉담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불확실한 학교>, 장애를 말해야 하는가?
– 장애인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

“전시 서문에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넣어야 할까요?”

이 질문에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특정한 시각이 있음을 함의한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그 관점은 은 아마 ‘영웅’과 ‘무능’이 아닐까? 비장애인이 바라보는 장애인은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 아니면, ‘도와주어야 할’ 대상이다. 이런 이중적 시선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장애를 지니고, 무엇인가 가시적인, 눈에 띌만한 성과를 이루어내면, 너무나 쉽게, ‘장애를 극복했다’고 단정 짓고, 마치 ‘영웅’처럼 치켜세운다. 하지만, 장애인의 ‘장애’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은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이라는, 극복은 ‘악조건이나 고생 따위를 이겨 내다’ 또는 ‘적을 굴복시키다’의 의미이다. 이와같은 사전적 정의를 보면, 이 두 단어가 서로 충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장애인에게 장애는 평생 갖고 있는 것인데, 이런 ‘제약’을 ‘이겨내고’, ‘굴복시켰다’는 것이다. 평생 안고 있는 ‘제약’을 어떤 것을 무엇인가를 성취했다고 ‘이겨내고’, ‘굴복시켰다’고 보는 것은 너무 큰 비약이 아닌가? 이와 반대로, ‘무능’의 시각이 있다. 장애인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여기고, 장애인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도와주려고 한다. 이런 행동의 기저(基底)에는 ’선행(善行)‘을 하고 있다는 도취감과 더불어 장애인을 ’시혜적 대상‘ 보는 시각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이중적 관점은 결국 장애인이 ‘주체’로서의 존재와 그 자리 잃는다.

위의 질문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또한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넣어야 한다, 넣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장애인에게 장애는 하나의 정체성입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존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제가 느끼는 건데, 작가는 작가로서 존재하는 대로 충실히 작업하면 된다고 봐요. 얼마 전에 큐레이터들도 만났는데 장애인 예술 그런 거 없대요. 그냥 그림, 그냥 사진이라고요.”

사실 위의 두 이야기 중 무엇이 더 ‘맞다, 틀리다’고 비교하고 평가할 수 없다. 그냥 두 이야기, 그 자체가 의미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에게 장애는 평생을 갖고 살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장애인에게 장애는 자신의 여러 정체성 중 하나이다. 작가를 소개할 때, ‘장애인 작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두 이야기 모두 의미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전시서문에는 ‘장애’라는 말이 담기지 않았다.

<불확실한 학교>에 혼자 남아 있는 시간
– 다양한 시각의 교차, 절망과 희망 사이

전시장 지킴이를 하면서 나는 관람객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았다. 관람객들을 반응을 보며 절망하기도, 그래도 희망을 기대하기도 했다.

“장애인이 한 거래. 그냥 가자.”

어느 한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오자마자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 없었나,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적지 않게 충격적이었다. 전시는 제대로 보지 않고, 단지 ‘장애’를 가진 작가들이 한 전시라는 이유로 그렇게 말하고, 판단하는 것에 정말 놀랐다. 하지만 그만큼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일부분을 본 것이라 생각한다. ‘장애’, 그 하나의 이유로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고, 외면하고 배제하는 것, 어쩌면 이 시각은 장애를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이 반증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따뜻한 시선도 보았다. 6-7세 된 아이와 어머님이 전시를 보러 온 경우가 있었다. 아이와 그 어머니가 전시장 내에 재생한 청각장애인에 관한 동영상을 보며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엄마, 청각장애인이 뭐야?”

“수아(가명)는 엄마 목소리가 들리지? 근데 청각장애인은 수아처럼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이야. 그래서 나중에 수아가 필요하면 도움을 주면 좋을 거 같아.”

사실 이 대화에서도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시혜의 대상’이라는 점이 한계점이기는 하다. 그러나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분리된 한국의 사회 및 교육 현실에서 이런 대화는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길거리에서도 장애인을 보기 힘든 곳이며, 높은 턱과 경사 등등 장애인의 이동 여권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또한 일반학교와 특수학교가 구분된 교육상황에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보거나 교류할 상황이 거의 없는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시장 내에 설치된 동영상을 통해 어린 아이에게 장애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그래도 조금의 희망을 기대해 보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불확실한 학교>를 말하다.
– 서로 다른 ‘언어’의 공존, 언어 장벽의 붕괴 그리고 주체로서 자리

<불확실한 학교>는 주류 ‘언어’에 의문을 던진다. 주류 ‘언어’란 ‘소리’, 즉 ‘음성언어’를 말한다. 하지만 언어는 꼭 ‘음성’이어야만 하는가? 언어는 손으로도 존재할 수 있고, 보는 것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언어가 공존했던 곳이 <불확실한 학교>의 세미나였고, 전시였다. 서로 다른 언어들이 존재했지만, 의사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더 나아가, 오히려 언어를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음성언어의 대화는 잘못 들음으로써, 또, 주변 환경에 따라 소리가 잘 들리기도 하고, 안 들리기도 하며, 대화에 오해가 생길 여지가 있다. 그래서 말한 이의 의도와 다르게 듣는 이에게 전달되어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불확실한 학교>에서 말을 소리로 듣기도, 보기도 하면서, 그런 오해를 줄일 수 있었다. 또한 서로 다른 언어를 하는 사람들 간에 소통의 창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언어들이 공존하면서 음성언어와 시각언어의 장단점을 서로 보완하여 주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언어가 상호의존하며 언어 간의 벽을 허문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불확실한 학교>는 장애인이 주체로서 있었던 곳이었다. <불확실한 학교>는 흔히 ‘장애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해.’,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을 도와주어야 해.’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부여되는 역할행동들에서 벗어난 곳이었다. 장애인은 한 사람의 주체로서 개인의 의견을 내고, 작품을 만들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을 맹목적으로 돕는 것이 아닌, 필요할 때 과정이 좀 더 잘 진행될 수 있는 정도로 역할을 하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각각의 주체의 한 명으로서 존재하였던 곳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가 공존하며, 각각의 언어가 서로 보완하였던 곳, 그리고 장애의 유무를 떠나 모두가 각각의 한 명의 주체로서 만났던 곳,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했던 곳, 그럼으로써 항상 온기(溫氣)로 가득했던 곳, 그곳이 <불확실한 학교>였다. 이제 이 온기의 씨앗이 또 다른 <불확실한 학교>로 계속 이어지고, 더불어 <불확실한 학교> 울타리를 넘어 더 많은 다양한 곳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그래서 어느 곳이든 장애의 유무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한 명의 주체로서 사람들 속에서 관계하며, 더불어 사는, 함께 사는 곳이 되길 희망한다.

협력 작가 라야의 <불확실한 학교 다큐멘터리> 장면 중 일부분

글쓴이: 원희윤. 좋은 문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이며, 그 일환으로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다.

램프와 접근성 매핑 Ramp and Accessibility Mapping

 

사라 헨드렌엘리스 셰퍼드는 북서울미술관 근방의 공공 시설과 건축물의 경사로 유무와 접근성을 사전 조사했으며, 세미나 참가자들과 함께 조사 활동을 이어가고자 한다. 세미나는 사라 헨드렌의 〈끼어든 경사로〉를 무대 삼아 안무가 엘리스 셰퍼드가 펼치는 공연으로 시작한다. 이어 두 작가와 참가자들은 북서울미술관 근방을 함께 행진하며 주거 지역과 상업 지역에 일시적으로 개입한다. 매핑 워크숍에서는 휠체어 사용자들의 공간 접근성을 시각화하는 지도를 만든다. 강연에서는 사라 헨드렌의 장기 프로젝트인 〈끼어든 경사로〉와 관련된 연구 내용을 소개한다.

투어(60분) →  매핑 워크숍(60분) → 강연(60분)

09.03, 11:00am2:00pm
북서울미술관 커뮤니티갤러리와 야외 공원 (지도)

Sara Hendren and Alice Sheppard invite participants to expand their research about accessibility and availability of ramps in public infrastructures and architectures around Buk Seoul Museum of Art. The seminar begins with Shepppard’s choreography staged on Hendren’s Slope: Intercept. The artists and participants tour around the museum, temporarily intervening in residential and commercial spaces. In the mapping workshop, participants create a map visualizing wheelchair accessibility. Hendren’s talk introduces her ongoing project Slope: Intercept and related research.

Tour(60 minutes) → Mapping workshop(60 minutes) → Lecture(60 min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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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미나는 노들야학* 학생, 교사가 투어, 매핑 워크숍, 강연 후 질의 응답에 함께 합니다.

*노들야(野)학
노들야학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차별을 받아왔던 장애인의 삶을 직시하고, 그 불평등한 현실에 맞서 장애 당사자 스스로의 생각과 힘을 기르기 위한 교육을 진행하는 단체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연대의 끈을 넓혀나가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The seminar will be cooperate with the *Nodeul Popular School‘s students, teachers for workshops and lectures. They will have a question and answer session after the tour, and mapping.
*The Nodeul Popular School

The Nodeul Popular School is dedicated in education to help confront the unequal lives of those with disabilities. The school focus on students who have been unable to receive a proper education and are discriminated against solely because of their disabilities, and to help foster the individual thoughts and abilities within the context of the unjust reality in which we live.
The school as an organization is working towards breaking down the boundaries that exist between persons with disabilities and able-bodied persons and broadening mutual solidarity for a more inclusive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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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러닝 다이어리 Unlearning diary

언러닝 다이어리. 최태윤. Unlearning diary. Taeyoo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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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Installation view at SeMA Biennale Mediacity Seoul 2016, Image courtesy of Seoul Museum of Art

서울시립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기간 동안 서울시립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불확실한 학교 과정이 전시 되었습니다.

During SeMA biennale Mediacity Seoul 2016, Uncertainty School process was exhibited in the Project Gallery at the Seoul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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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학교 다큐멘터리 티저. 라야. Uncertainty School Documentary Teaser. R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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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친구 가구 why not look here. 신익균. Your Friend furniture. Ikkyun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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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러닝 다이어리. 최태윤. Unlearning Diary. Taeyoon Choi

taeyoon-choi_6김현우 작가의 드로잉 선물. Drawing gift. Hyunwoo Kim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Installation view at SeMA Biennale Mediacity Seoul 2016, Image courtesy of Seoul Museum of Art

Incomplete Notes from Uncertainty School

Incomplete Notes from Uncertainty School

Taeyoon Choi

The summer of 2016 flew past like a flash. Working on Uncertainty School has remarkably been unlike working on any other projects. Uncertainty School felt like an unrehearsed play: everyone improvising a role they construct for themselves and learning along the way. I learned many lessons from the participants, had beautiful encounters, and experienced moments of natural communion. It is near the end of October 2016 now. The workshops and seminars have been completed and the participant exhibition is currently on view. There are a few more events until the end of November. I am revisiting my notes and transcripts of our conversations and writing this essay as a letter of love and appreciation for the participants, collaborators, lecturers and coordinators of Uncertainty School.

Uncertainty School is inclusive of people who have distinct senses and ways of communicating, moving and thinking. The participants are a mix of artists, social workers, activists, and people with and without disability. The collaborating organizations, Seoul Art Space Jamsil, Raw+Side and individual supporters, recommended about twenty participants. Uncertainty School has been commissioned by SeMA Biennale Mediacity Seoul 2016 and primarily took place in the Buk-Seoul Museum of Art, along with classes in other branches. Collaborating artists have been invited to support the participants and also to document the process. The workshops were organized for the participants and the seminars were open to the general public. The curriculum has consisted of three parts: five workshops on technology for artists, focusing on computer programming and storytelling; five seminars with artists participating in the biennale, focusing on critical topics in contemporary society; and three sessions to prepare for the participants’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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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nlearning

The word “unlearn” means “to put out of one’s knowledge or memory, to undo the effect of: discard the habit of.”[1] I use the word to challenge the biases in the knowledge and the power structures of institutions. It unearths the potential for authentic learning in unusual situations. Everyone learns at a different speed. Trust is necessary for learning to take place. Everyone builds trust in different ways. This diversity is often underappreciated in schools where the curriculum and pedagogy are standardized. Schools tend to normalize everyone’s language and ways of communicating.

I got interested in the concept of unlearning after teaching for a few years. In 2013, I cofounded the 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 in New York City. SFPC is an artist-run school focusing on art, technology, poetry and code. I teach at SFPC and collaborate with a team of teachers and experiment with pedagogy and curriculum. This experience compelled me to reflect upon the technology literacy among minority groups. One of the lecturers, Sara Hendren, inspired me to research technology and disability. In 2015, I organized a workshop called Unlearning All That We’ve Built at the University of Seoul. I worked with a group of participants to produce a book about unlearning. In 2016, I organized the workshop Signing Coders at BRIC in Brooklyn, New York., where I taught computer programming to students who are deaf. I also organized the workshop Unlearning Disability at Pioneer Works in Red Hook, New York. Beck Jee-sook, the director of Mediacity Seoul 2016, asked me to take part in a summer camp. There, I developed the concept of a school that uses the biennale as a resource. I wanted to create an accessible and inclusive space for diverse students.

My collaborator, Christine Sun Kim, has also inspired me. We created performances and objects over the past few years. Our work often relates to the malleability of time. Christine has been profoundly deaf from birth. Her work derives from her experience of being deaf and celebrates the beauty of sign language. She uses technology for artistic empowerment, reclaiming ownership of sound. Her practice and position influenced my thinking of unlearning.

As this society does not have a clear place for visual languages, I often sense a great need to legitimize our language by politicizing sound and the voice box, which are two tools I use to explore my position. This contributes to my practice of unlearning society’s views and etiquettes around sound.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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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urriculum

The Uncertainty School workshops focused on computer programming. I taught the fundamentals of computation, such as the concept of variables and functions. Some of the material is based on the curriculum I developed at the 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and Signing Coders. At Uncertainty School, I invited a team of co-teachers to collaborate on teaching. We used p5.js, a JavaScript library, to create code examples. We also designed fun activities like mapping and data visualization. The participants learned the basic skills necessary to make personal websites. The final session, co-taught with documentary director Lee-Kil Bora, focused on storytelling through videos.

I use code in my art because I am fascinated by the system of abstraction and repetition. I approach code as a form of language, before I approach it as a form of technology. I teach code by demystifying technical concepts, for instance, breaking down Boolean logic into card games and movement. There are many different kinds of code, ranging from pragmatic to esoteric. Most people think that code is foreign or inapproachable. I think that code can be a common language between people who communicate differently. Code has the potential to become a language that does not discriminate people based on their differences.

Uncertainty School focus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art, technology, the body and the environment. The seminars featured seven artists who have been participating in the Biennale. The seminars used the Biennale as a resource. The Biennale invited a large number of artists, but there were not many opportunities for the artists to meet local community. The seminars provided a chance for the artists to meet the Uncertainty School participants and for the participants to have an intimate interaction with the artists. The seminars were open to public registration. The numbers of participants were usually around 20 and large-scale interventions in the public space had up to 40 persons. All of the seminars had KSL interpretation and captioning, and they were accessible to people with disabilities.

Natascha Nisic’s seminar “History and Contemporariness” examined the connection between natural and personal disasters. Soichiro Mihara’s seminar “Disaster and Natural System” explored the relationship between energy and our life, in light of the nuclear accidents in Fukushima. Eduardo Navarro’s seminar “A Possibility Rather Than a Limitation” focused on the embodiment of different senses and perceptions of time. Joo Hwang’s seminar “Vesti la giubba” scrutinized gender and representation from the feminist perspective. Hong Seung Hye’s seminar “My Garage Band” inquired into technology and amateur production.

Sara Hendren and Alice Sheppard’s seminar “Ramp and Accessibility Mapping” discussed the accessibility of wheelchair users. We invited Nodeul Popular School for Disable People, a disability activist organization , a disability activist group based in Seoul. The 40 participants joined a walking tour around the Buk-Seoul Museum of Art. We walked together at different speeds, on wheel and on foot. We learned to examine the subtle and dramatic elements that create inaccessible spaces. It was a chance to question our understanding of the right way to move. A participant from Nodeul School said, “We are always moving in a group. We are not one body. Yet, when we walk together, our bodies extend over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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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Untranslatable

Uncertainty School faced the unique challenge of translating many different languages and ways of communicating. Translation is more than the transfer of meaning from one language to another. Rather, it is an active engagement with both languages and senses. Most hearing people do not have experience with sign language and oralism. They are often impatient with individuals who speak slowly and quickly, quietly and loudly, or with a distinct accent. Inclusion begins by appreciating different types of communication.

We had a Korean Sign Language (KSL) interpreter and Real-Time Captioning Service in all classes. The captioning offered great assistance to both deaf and hearing people. At some points, our translation efforts were theatrical. In one class, we had an English to Korean translator, two KSL interpreters, a captioning service, and an assistant.

A few of the participants have autism spectrum disorder or Down syndrome. They have limited verbal communication. However, they communicate through prolific drawing and writing. In some cases, they communicate with the support of family and professional assistants. Translation was an ongoing process for everyone.

Community is not the work of singular beings, nor can it claim them as its work, just as communication is not a work or even an operation of singular beings, for community is simply their being—their being suspended upon its limit. Communication is the unworking of work that is social, economic, technical, and institutional.[3]

We came together as strangers who speak different languages. By focusing on everyone’s language prior to interpretation, we respect the dignity of everyone as he or she is. We want an environment inclusive of many ways of communicating, learning, making and being. When we transition from “translation of information” to “transmission of emotions,” we can find a ground for communion. There, we become an untranslatable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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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Interdependence

There are many walls in a city. There are physical walls such as barbed wire fencing, stairs, and curb cuts. There are also less visible walls such as implicit biases, stereotypes, and derogatory languages. These walls are intertwined. They create a boundary between inside and outside, normal and abnormal.

Most people think anyone can take a walk. They think taking a walk is an easy activity, a chance to take a break from their daily routine. However, it is different for someone who has a body type and way of moving that are not considered normal in a given society. Taking a walk may entail a struggle to occupy a space that does not accommodate them. For them, it is not possible to go around walls. The walls interrupt their walk and impose emotional burdens. For example, wheelchair users in Seoul have to negotiate the city’s inaccessible and dangerous streets. They also risk facing hostility and a chilling sense of unwelcome. For, the walls are built on the false belief of normalcy and independence.

Butler: Nobody takes a walk without there being a technique of walking. Nobody goes for a walk without something that supports that walk, something outside of ourselves. And maybe we have a false idea that the able-bodied person is somehow radically self-sufficient.

[…]

S. Taylor: And I think that’s something that definitely affects the image of disabled people. That somehow disabled people are perceived as more dependent, or that they are the ones that are dependent, when in actuality we are all interdependent, that is, dependent on different structures and on each other.[4]

The question “What supports our ability to take a walk?” translates into broader questions: “What supports our ability to visit a museum?,” “What supports our access to learning?” and “What supports our capacity to participate in a society with dignity?” These questions apply to everyone. When we acknowledge our interdependence, we can bring down the walls and build more support structure for inclusion. We can bring justice into everyday life. A person living in a just society should be able to take a walk without interruption. A person in a just society should be able to have a creative life.

“Support structure is the syntax of transformation, the relational system latent in any object. Support structures are set-up not to modify a given phenomenon or an individual occurrence, but to intervene at the level of their determinants. They are affecting the condition of possibility for those to occur in the first place.”[5]

Uncertainty School participants and collaborators worked together to create an exhibition titled “Interdependence.” The exhibition includes paintings, drawings, ceramics, publications, documentations of the process and videos. The curatorial theme “Interdependence” explores the artists’ unique senses and languages.

The Uncertainty School participants’ exhibition, “Interdependence,” presents the participants’ work and the program’s progress. “Interdependence” is an exhibition about the beauty of our distinct incompleteness and the possibility to embrace it. It’s also a chance to share the “radical reciprocity” of the Uncertainty School’s lecturers, participants and collaborating artists with the visitors. Interdependence is potentiality, transforming some things that are deemed impossible individually, into a possibility with collective capacity.[6]

The exhibition space is designed and built by Small Studio Semi. All of the works are installed on support structures, which lean against each other. The exhibition is set up like an open studio. There is also a screening of the participants’ video works and an Uncertainty School documentary by Raya scheduled near the end of the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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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nversation

The exhibition “Interdependence” was made through a series of conversations. We hosted studio visits and also organized group meetings for presentations and discussions. In smaller groups and casual settings, we enjoyed opportunities to share honest thoughts about our work and relationships to disability. These conversations encapsulate the pivotal essence of Uncertainty School.

YoungIk Lee (Artist): Since I’m deaf, I communicate with hearing people through writing and oralism. I have to look constantly at another person’s face when having a conversation. Naturally, I pay attention to the person’s facial expressions. I think about the person and their personality by reading their facial expressions and the way they look at me. However, I have not really understood them completely. Sometimes people act up, trying to hide their real feelings. I can see when someone is trying not to reveal himself or herself. I tried to visualize this idea through a video that is projected on a glass: the projection penetrates through the glass, and the portrait is covered by the projection.

Yujin Lee (Artist): Everyone has a different perspective. I live in a space without sound. Another person lives in a space with sound. Yet another person lives in a space without color. Since each person has a different perspective, various spaces collide or interconnections are created.

Minhee Lee (Artist): I listen to a wide variety of music. The sound heals my unconscious wounds. I like the saying “There is light in darkness.” I feel empathy with these words. I wish to continue making artwork to find light and hope inside of my darkness.

Yerim Kim (Social worker/ Seobu Welfare Center for Persons with Disability): We teach calligraphy to students with disability. One student has autism spectrum disorder and Tourette syndrome. Most people were prejudiced against him in that they believed him to be violent and aggressive. The social workers also struggled to approach him because we couldn’t use verbal communication. As he learned calligraphy, he would write beautiful messages that he was unable to say. The amazing things that he had wanted to say surprised us. He now communicates freely by creating artwork.

The participants include professional artists, the “creators” whose art is a form of expression and communication, educators, social workers and family members of a person with disability. Naturally, their relationships with disability are different. Some participants strongly prefer that their art be unassociated with their disability, and others take pride in their disability and culture. Our conversations—disagreements and confrontations—were rare chances to question the concept of art and disability.

Minhee Lee (Artist): I feel artists need to focus on their art and their being as an artist. Nowadays, the word disability no longer appears in the art world. I think that this has been made possible because we are conscious of not using the word to describe art. Even if you are conscious of disability, it doesn’t help because it’s only you who suffers. I think that painting is just a painting, and artwork is just the work of art. I used to work with some people. When they wrote about disability to describe the artwork, I got very angry. I don’t want people to look at my disability, but just my work and me as a person. There’s no such thing as disability. Disability is a result of all the obstacles we make. When we draw a line, everyone draws a squiggle. I recently met curators, who say there’s no such thing as Able Art or Disability Art; there are just paintings and photos.

Yerim Kim (Social worker / Seobu Welfare Center for persons with Disability): I don’t think that there is a negative element about the word disability. It’s just about being different. However, there are a lot of people with extremely negative perspectives about disability. Such images exist within people with disabilities as well, so it’s hard to talk about it. I think it’s better for the people with disability to talk about it with other people. By having a conversation about disability, people can reconsider their perspectives on disability. I’m not sure what it means for such words like disability to disappear. I think we need to have more conversations about how to see the genuine reality of what ex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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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Unstable

The world operates on certainty. The exactitude of time and space creates a sense of stability. In such a world, the distinctions between men and women, public and private remain unchallenged. In the school system, the distinction between teacher and student is also evident. However, such distinctions are arbitrary. Learning takes place in the uncertain spaces of streets, protests, parks and cities. We learn from our lovers, friends, family, and strangers.

We come into the world unknowing and dependent, and, to a certain degree, we remain that way.[7]

There is a joke among the Uncertainty School participants. One of the participants insisted on calling it the “Unstable School.” At first, it was merely a misspelling (in Korean) but it became an inside joke. We found it funny because it poked at our frenzied dance around the unknown. It also showed our appreciation of the instability and incompleteness that are inherent in every human being.

However, uncertainty does not entail not knowing. Uncertainty is questioning things that are considered to be certain, specific, stable, solid and undeniably true. Uncertainty School provided an opportunity to walk toward the unstable and unknown spaces. In this process, we made mistakes, underestimated the time, resources and effort necessary to make an inclusive learning environment. In this journey, I learned about my vulnerability and the importance of sharing individual senses with others. In light of the unstable nature of the project, Saerom Suh, the coordinator of Uncertainty School, suggested a poem by Bo-Seon Shim.

선행과 상관없는 동행

그런 것을 언제까지고 반복해보고 싶다. [8]

The literal translation of the passage is “Accompaniment that has nothing to do with the precedence. I want to repeat it indefinitely.” However, the English translation of 동행(同行) as “accompaniment” does not capture the poetic sense of “walking along,” which signals partaking in a collective journey. The beauty of the passage lies in the homonym of 선행, which can mean “precedence (선행先行)” or “doing good(선행善行).” Thus, the passage can be interpreted as “I want to keep walking along, regardless of whether we have already taken the path or whether the walking is meant to do any good.”

There was a joyous moment when one of the participants told me, “I like that you are doing this project for yourself and that I’m participating in it for myself.” It was an affirmation that he understood that our work is not about assistance or enablement and that, instead it is about “co-learning” between everyone partaking in the project. We uphold the participants as the center of the Uncertainty School. Over the two months of the program, we had noticed fewer distinctions between participants and collaborators, and smaller differences between people with and without dis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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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No longer an exception

I imagined Uncertainty School as a space without the distinction of disability. We tried our best to make an inclusive and welcoming environment. On the outside of “our bubble”, I became acutely aware of cultural biases and micro-aggression against people with disability in South Korea. I engaged in lengthy discussions with the participants about these issues. “Is disability a social construct or a material reality?” The question remains debatable.

Yet, it might be useful to approach it from a perspective of potentiality. Ability is about how someone can be “working” within the given social structure. Capability is the possibility for someone to be “un-working.” It is refusing to comply with the social norm. Potentiality unleashes the collective imagination. The intersection of ability, capability and potentiality supports human dignity. Art plays a significant role in this axis of support structures. Art is the glue for social inclusion. Art speaks with the poetics of coexistence. Art translates the untranslatable.

Uncertainty School is an ongoing experiment to make temporary communities. I hope to work with the participants again. I plan to invite them as teachers and collaborators in the next iteration. Perhaps, Uncertainty School in the summer of 2016 was a chance to prepare more meetings like this in different contexts and over a longer period of time. Our work will be complete when our demands for inclusion are no longer special. There is much more work to do in the near future.

[1]Merriam-Webster, s.v visit this site. “unlearn,” http://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unlearn

[2]Quoted from Christine Sun Kim’s statement, http://www.wnewhouseawards.com/christinekim.html

[3]Jean-Luc Nancy, The Inoperative Community (Minneapolis, MN: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1), 31.

[4] Astra Taylor, Examined Life: Excursions with Contemporary Thinkers (New York: The New Press, 2009), 187.

[5]Céline Condorelli, Gavin Wade, and James Langdon, Support Structures (Berlin: Sternberg Press, 2009), 29.

[6]Mediacity Seoul 2016, “Uncertainty School,” http://mediacityseoul.kr/2016/en/project/uncertainty-school-participant-exhibition-interdependence

[7] Judith Butler, Undoing Gender (New York: Routledge, 2004), 23.

[8] Bo-Seon Shim, Someone Not in Sight, (Seoul:Moonji Publishing, 2011), 26 . [In Korean].

This essay is written and edited for the publication of SeMA Biennale Mediacity Seoul 2016

Special thanks to Jeong Hye Kim, Achim Koh, Bora Kim, Sangmin Choi, Saerom Suh, Sungmin Lee, Grace Park, Jiwon Lee, Yumi Kang, Yekyung Kil, Beck Jee-sook

<불확실한 학교>에 대한 불완전한 노트

<불확실한 학교>에 대한 불완전한 노트 

최태윤

2016년 여름이 전광석화처럼 지나갔다. <불확실한 학교> 작업은 이제까지 해 왔던 프로젝트와 눈에 띄게 달랐다. <불확실한 학교>는 마치 리허설 없이 막 올린 연극처럼 배우 각자가 스스로 만들어낸 배역을 개선해 나가고 그 과정 속에서 배우는 것이었다. 나는 참가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아름다운 만남의 순간과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지금은 2016년 10월로, 모든 워크숍과 세미나가 끝났고 참가자 전시는 계속되고 있다. 전시가 끝나는 11월 말까지 몇 가지 행사가 아직 남아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그 동안 내가 쓴 작업 노트와 우리가 함께 나눈 대화 녹취록들을 다시 들춰보며, <불확실한 학교>의 참가자, 협력자, 강사, 코디네이터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표하는 편지로 이 글을 써 본다.

특별한 감각과 각기 다른 의사소통 방식, 움직임,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불확실한 학교>에서 모였다. 협력 기관인 잠실창작스튜디오와 로사이드, 개인 후원자들이 총 20여 명의 참가자를 추천하였다. 작가, 사회복지사, 활동가, 장애인, 비장애인 등으로 다양하게 섞여 참가하였다. <불확실한 학교>는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의 커미션 프로젝트이며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을 중심으로 하여 본관과 분관에서도 진행되었다. 협력 작가들을 초대하여 참가자 지원과 진행 과정의 기록에 도움을 받았다. 워크숍은 참가자를 대상으로 진행했고 세미나는 일반인에게도 공개되었다. 교과 과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졌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스토리텔링 중심의 테크놀로지 관련 워크숍 5회,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과 함께 현대 사회에 관한 비판적 주제를 다룬 세미나 5회, 참가자들의 전시 준비를 위한 세션 3회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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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탈학습

‘탈학습’이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지식과 기억에서 벗어남. 그 효과를 없애고 습관을 버리는 것’ [1]을 의미하는 단어로, 나는 왜곡된 지식과 제도적 권력 구조에 도전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비일상적 상황 속에서 진정한 학습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사람은 저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르다. 신뢰가 있어야 학습이 가능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학교는 이 같은 개인별 다양성을 충분히 이해해 주지 않고, 교과 과정과 교육을 표준화한다. 학교는 개인들의 언어와 의사소통 방식을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지난 몇 년 간 수업을 하면서 탈학습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13년 뉴욕에서 시작한 시적연산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는 작가가 운영하는 학교이며 예술, 테크놀로지, 시(詩), 코드에 중점을 두고 교육한다. 나는 공동설립자이며 직접 교육자로서 여러 교사들과 협력하면서 교육 방식과 교과 과정을 실험해 왔다. 여기서 얻은 경험이 사회적 소수 그룹의 테크놀로지 독해력에 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사 중 한 명인 사라 헨드렌은 테크놀로지와 장애에 관해 연구하도록 영감을 주기도 했다. 지난 2015년에는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우리가 세운 벽을 탈(脫)학습 하기>라는 워크숍을 기획하고, 참가자들과 함께 탈학습에 관한 책을 만들었다. 2016년 브릭(BRIC, 뉴욕 브루클린 비영리 예술/미디어 공간)에서는 <사이닝 코더스(Signing Coders)>라는 워크숍을 기획하여 농인 학생들에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쳤고, 파이어니어 웍스(Pioneer Works)에서는 <장애의 탈학습(Unlearning Disability)>이라는 제목으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백지숙 미디어시티서울 2016 예술감독이 여름 캠프 기획자로 초청했을 때, 나는 ‘비엔날레를 자원으로 활용하는 학교’라는 개념으로, 다양한 학생들이 다가올 수 있고, 주인이 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고자 했다.

또한 동료인 크리스틴 선 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지난 몇 년 동안 함께 퍼포먼스와 오브제 작업을 진행해왔다. 우리는 작업에서 종종 시간의 유연성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선천적으로 농인인 크리스틴의 작업은 듣지 못하는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수화의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그녀는 테크놀로지를 예술적 힘으로 사용하여 소리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탈학습에 관한 나의 생각은 그녀의 실천적 작업과 입장에서 영향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시각 언어의 자리가 불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의 위치를 탐구하는 데 사용하는 두 가지 도구인 소리와 성대를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우리 농인의 언어를 정당화해야 한다고 종종 강하게 느낀다. 소리를 둘러싼 사회적 시각과 에티켓의 탈학습에 관한 내 작업은 여기에 근원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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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교과 과정

<불확실한 학교> 워크숍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변수나 함수 개념 같은 컴퓨테이션의 기초를 가르쳤다. 일부 워크숍 자료는 시적연산학교와 <사이닝 코더스> 워크숍에서 개발한 교과 과정에서 가져왔다. 수업에 협력할 협업 교사들도 초청했다. 우리는 p5.js라는 자바스크립트 라이브러리를 사용하여 코드 샘플을 만들었고, 매핑이나 정보 시각화같은 흥미로운 디자인 활동을 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영화감독 이길보라와 공동으로 진행한 마지막 세션에서는 비디오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을 다루었다.

내가 미술 작업에 코드를 활용하는 것은 추상과 반복이라는 시스템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코드를 테크놀로지이기 이전에 언어의 형태로 보고 접근한다. 그리고 불 논리(Boolean logic)를 카드 게임이나 몸 움직임으로 표현하도록 연습했다. 기술적인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코드를 가르쳤다. 코드의 종류는 실용적인 것에서 난해한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이 코드를 낯설고 접근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사람들 사이에 코드가 공동의 언어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드는 사람을 차이에 기반해 차별하지 않는 언어가 될 가능성이 있다.

<불확실한 학교> 세미나는 예술, 테크놀로지, 몸, 환경의 관계성에 초점을 두었다. 세미나에서는 비엔날레 참여 작가 일곱 명을 선보임으로써 비엔날레를 세미나의 자원으로 활용했다. 수많은 작가들이 비엔날레에 초청되지만, 이들이 지역 공동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적다. 그래서 전시 작가들이 이 세미나를 통해 <불확실한 학교> 프로젝트 참가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참가자들은 작가들을 만나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세미나는 일반인에게도 등록하면 참여할 수 있게 개방되었다. 총 20명에서, 공공 공간에 개입하는 행사의 경우에는 40명 정도까지가 참여했다. 모든 세미나는 한국어 수화 번역과 문자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여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였다.

나타샤 니직의 세미나 ‘역사와 동시대성’은 자연적 재난과 개인적 재난의 연관성 문제를 다루었다. ‘재난과 자연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세미나에서 소이치로 미하라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관점에서 에너지와 인간 삶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에두아르도 나바로의 세미나 ‘한계가 아닌 가능성’에서는 서로 다른 감각들의 체화와 시간에 대한 지각에 대해 논의했고, 주황은 ‘의상을 입어라’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젠더와 재현의 문제를 다루었다. 홍승혜 작가의 세미나 ‘나의 개러지 밴드’는 테크놀로지와 아마추어의 제작/생산에 주목했다.

사라 헨드렌과 앨리스 셰퍼드는 ‘램프와 접근성 매핑’ 세미나에서 휠체어 사용자들의 접근성 문제를 다루었다. 우리는 서울의 장애인 행동 단체인 노들야학 선생님과 학생들을 초청해, 총 40명이 북서울미술관 근방 걷기 투어에 참여했다. 휠체어로 이동하는 이들과 두 다리로 걷는 이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함께 걸어가는 투어를 통해 우리는 [장애를 가진 이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미묘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요소를 관찰하는 법을 익혔다. 올바른 움직임에 관한 기존의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회였다. 노들야학의 한 참가자는 “우리는 늘 그룹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의 몸은 아니다. 우리가 함께 걸으면 우리 몸은 공간에 확장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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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번역불가능

<불확실한 학교>는 여러 가지 다른 언어 사이의 번역과 의사소통 방식에 있어서 독특한 도전을 마주해야 했다. 번역은 말의 의미를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 이상의 행위이다. 그것은 두 언어와 각 언어의 감각들에 모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일이다. 청인(聽人)은 대체로 수화나 구화법에 대한 경험이 없다. 사람들은 보통 말을 느리게 혹은 빠르게 하는 사람, 작게 또는 크게 말하는 사람, 독특한 액센트를 사용하는 사람을 참을성 없이 대한다. 포용은 다른 형태의 의사소통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모든 수업은 한국어 수화와 실시간 자막 서비스를 갖추고 진행되었다. 실시간 자막은 농인, 청각 장애인과 청인 모두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떤 수업의 경우, 영어-한국어 통역사, 수화 통역사 두 명, 속기사, 어시스턴트 등이 동원되어 힘을 합쳐야 했다. 번역을 위한 이러한 노력이 연극 같아 보이기도 하였다.

참가자들 중에는 자폐 증상을 가진 이들과 다운증후군 장애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구두 의사소통에는 제약이 있지만 그림과 글쓰기로 의사소통을 하고, 때로는 가족과 전문 활동 보조인의 도움으로 소통하기도 한다. 이처럼 번역은 모든 이들에게 현재 진행 중인 하나의 과정이었다.

공동체는 단수적 존재들의 성과도 아니고 그들의 작용 자체도 아니다. 왜냐하면 공동체는 그들의 존재—공동체의 한계에 매달린 그들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통이란 사회적·경제적·기술적·제도적 과제에서 벗어나 무위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3]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낯선 사람들로서 만났다. 모든 사람들의 언어를 해석하지 않은 선험적인 상태에 집중하면 모든 이들의 존엄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사소통 방식, 학습 방식, 만드는 방식과 존재 방식이 허용되는 포용적인 환경이다. ‘정보의 번역’에서 ‘감정의 전달’로 전환되는 순간, 바로 거기에서 공동체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 곳에서 우리는 번역 불가능한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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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호의존성

도시 안에 수많은 벽이 존재한다. 철조망으로 둘러싼 담, 계단, 도로 경계석 같은 물리적인 벽이 있는가 하면, 은밀한 편견, 고정 관념, 폄하적 언어 같이 상대적으로 비가시화 된 벽들도 있다. 이런 벽들이 서로 얽혀 있고, 이들이 내부와 외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를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산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책은 편안한 활동이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성 사회에서 정상으로 여기지 않는, 신체와 움직임이 다른 사람들에게 산책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들에게 산책은 자신을 수용하지 않는 공간을 어렵게 점유하는 일이다. 이들이 커다란 벽을 우회해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벽은 이들의 걷기를 방해하고 감정의 짐을 지운다. 예를들어 서울에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도시 내에 가득한 접근 불가능하고 위험한 도로와 타협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적대감과 냉랭한 거부를 감내해야 한다. 왜냐하면 벽은 정상 상태와 독립성에 관한 그릇된 믿음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버틀러: 걷는 기술도 없이 걷는 사람은 없습니다. 걷는 것을 보조해 주는 우리 외부의 무언가 없이 그저 걷는 사람은 없죠. 어쩌면 비장애인이 철저하게 자족적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개념일 겁니다.

[…]

S. 테일러: 사실 우리는 모두 상호의존적인 존재인데 장애인만 의존적인 존재라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더’ 의존적인 존재라고 보는 인식이 있어요. 장애인은 비장애인과는 상이한 구조에 기대어 서로에게 의존하는 존재라고 보는 거죠.[4]

“우리가 걸을 수 있게 돕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우리가 미술관에 갈 수 있게 도와주는 능력은 무엇인가?”,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접근성을 도와주는 것은 무엇인가?” 또 “우리가 사회에 존엄성을 유지하며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역량은 무엇인가?”로 해설할 수 있다. 이러한 질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상호의존성을 인식할 때, 우리는 벽을 허물고 모든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더 많은 지지 구조물(support structures)을 세울 수 있다. 정의를 일상적 삶에서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에 사는 사람은 장애물 없이 산책할 수 있어야 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지지 구조는 변형의 문법이고 모든 대상에 잠재하는 관계적 시스템이다. 지지 구조물은 주어진 현상이나 개별적 사건을 변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들을 결정하는 요인에 개입하기 위해 세워지는 것이다. 지지 구조물은 결정 요인들이 처음부터 발생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의 조건에 영향을 미친다. [5]

<불확실한 학교>의 참가자들과 협력자들이 함께 만든 참가자 전시 <상호의존>에서는 회화, 드로잉, 도자기, 출판물, 프로세스 다큐멘터리와 비디오 등을 선보였다. 전시 주제 ‘상호의존’은 작가들의 독특한 감각과 언어들에 주목했다.

〈불확실한 학교〉 참가자 전시 <상호의존>에서는 〈불확실한 학교〉 참가자들의 작품과 학교 프로그램의 과정을 소개한다. <상호의존>은 우리 고유 불완전함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포용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또한 〈불확실한 학교〉 강사와 참가자, 협력 작가들이 서로에게 보여준 ‘급진적 호혜’를 관람객과 나누는 자리이다. 상호의존의 잠재력은 각자가 혼자였을 때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공동의 역량으로 가능해지는 데에 있다. [6]

협력 작가 소목장세미는 전시 공간을 디자인했다. 모든 작품은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의 구조로 설치되어 있고, 전시는 오픈 스튜디오 형식으로 꾸며졌다. 참가자들의 영상 작업과 라야의 <불확실한 학교> 다큐멘터리는 전시 기간 말미에 상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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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화

<상호의존> 전시는 일련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졌다. 프리젠테이션과 토론을 위해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두 번의 단체 미팅을 가졌다. 편안한 분위기의 소규모 모임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작업과 장애가 가지는 연관성에 관한 솔직한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아래 대화는 <불확실한 학교>의 핵심적 본질을 보여준다.

이영익(작가): 제가 청각장애인이다 보니까, 건청인들하고 대화할 때는 필담과 구화로 대화해요. 대화할 때는 항상 입 모양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항시 얼굴에서 떼지 못하다 보니까 얘기 나눌 때마다 표정의 변화가 자연스레 제 눈에 들어오게 돼요. 그러다 보니 얼굴에서 떠오르는 표정과 눈빛을 읽으며 상대가 지금 어떻고, 어떤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근데 그렇게 보더라도 그 사람을 완전히 파악한 게 아니잖아요. 자신이 놓친 또 다른 면을 다른 누군가가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속내를 들킬까 봐 감추려고 하거나 연기를 하려는 사람도 있겠죠. 이처럼 자신을 어떻게든 드러내지 않으려는 게 보였어요. 그걸 유리 위의 영상과 투과된 영상, 그리고 투과된 영상에 가려진 초상화로 나타낸 거예요.

이유진(작가): 사람마다 보는 시야가 다르잖아요. 예를 들면, 제가 소리가 없는 공간에 살고 있고, 다른 사람은 소리가 들리는 공간에 살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색이 없는 공간에 살고 있잖아요. 각자 보는 시야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공간들이 충돌하거나, (발생하는) 연결고리를 이 전시의 컨셉트로 잡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민희(작가): 저는 다양하게 음악을 들었어요. 그 소리에 제 무의식적인 상처가 녹아나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전 ‘어둠 속에서도 빛이 있다’라는 말을 좋아하고 공감합니다. 제 어둠 안의 빛, 희망을 찾는 작업을 앞으로 하고자 합니다.­

김예림(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사회복지사): 저희는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캘리그라피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에 자폐성이랑 뚜렛 증후군이 있는 어떤 분이 있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저 사람은 공격적이고 위험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많이 갖고 있기도 했고, 사회복지사들도 어떤 언어적 소통이 어려워서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들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캘리그라피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 분이 저희가 상상하지 못했던 그런 말들을, 평소에는 말을 안 하시는데 이런 언어들을 쏟아내는 걸 보고 놀라게 되었어요. 현재 그 분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유롭게 소통을 하고 있어요.

참가자들 중에는 전문적인 작가, 작품이 곧 표현과 의사소통 형식인 ‘창작자’, 교육자, 사회복지사, 장애인의 가족들이 포함되었다. 자연히 각자 장애와 갖고 있는 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일부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자신의 장애와 연관되지 않기를 강하게 원했고,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의 장애와 그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 서로 다른 의견과 충돌은 예술과 장애라는 개념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이민희(작가): 제가 느끼는 건데, 작가는 작가로서 존재하는 대로 충실히 작업하면 된다고 봐요. 시대적으로 미술계 안에서도 장애라는 말은 없어요. 그냥 우리 스스로 의식해서 생긴 문화인 것 같아요. 그걸 의식해봤자 자기가 힘든 거잖아요. 전 그냥 그림 그 자체, 작품 그 자체, 그거 같아요. 옛날에 사람들, 초기 (작업실) 멤버들과 얘기했을 때도 장애 그런 거 말고 사람과 사람의 그 작업을 봤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장애라는 말을 썼을 때 제가 되게 심하게 말했거든요. 그런 거 없다, 다 우리가 만든 장애물이다. 선을 그을 때도 누구나 삐뚤 빼뚤 그리잖아요. 얼마 전에 큐레이터들도 만났는데 에이블 아트, 장애인 예술 그런 거 없대요. 그냥 그림, 그냥 사진이라고요.

김예림(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사회복지사): 저는 이제 장애라는 게 저는 부정적인 요소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다른 거잖아요. 그런데 굉장히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도 그런 것들 얘기하기가 너무 어렵죠. 저 같은 경우는 그런 것들을 같이 얘기하고, 이 사람이 오히려 사회에 나가서 그런 얘기를 하면서 장애에 대한 생각을 사람들이 다시 해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 말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보다는 정말 실제로 있는 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더 많이 얘기하고 나눠야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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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안정

세상은 확정성에 기반하여 운영된다. 시간과 공간의 정확성이 안정감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세계에서 남성과 여성,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은 의심의 여지 없이 고정되어 있다. 학교 시스템의 경우 교사와 학생 또한 분명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들은 자의적인 것일 뿐이다. 배움은 거리, 시위, 공원, 도시의 불확정적인 공간에서 일어나고, 우리는 연인, 친구, 가족, 낯선 타인들에게서 배움을 얻는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세계, 의존적인 세계에 접어들었고, 어느 정도는 그런 상태로 남아 있다. [7]

<불확실한 학교> 프로젝트 참가자들 사이에 오가던 농담이 하나 있다. 한 참가자가 <불확실한 학교>를 ‘불안한 학교’라고 잘못 적으면서 시작되었다가 그들 사이에 농담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의 주변을 맴도는 양상을 콕 짚어냈다는 점에서 이것은 웃음을 자아냈다. 또 이 말은 우리 존재 안에 내재하는 불안정성과 불완전성에 대한 이해를 드러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곧 알지 못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불확실성은 확실한 것, 구체적이고 안정적이며 견고한, 의문의 여지가 없는 진실로 여겨지는 것들에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다. <불확실한 학교>는 불안정하고 알 수 없는 공간을 향해 걸어가는 하나의 기회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실수를 하기도 했고, 또 포괄적인 학습 환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 자원, 노력을 과소평가했다. 이 여정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취약함, 그리고 타인과 감각을 공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불확실한 학교>의 코디네이터 서새롬은 이 프로젝트의 불안정적인 본질을 조명할 만한 심보선의 시 한 편을 추천했다.

선행과 상관없는 동행

그런 것을 언제까지고 반복해보고 싶다.[8]

이 시 구절을 영어로 직역하면 “Accompaniment that has nothing to do with the precedence. / I want to repeat it indefinitely.”가 된다. 그러나 번역에서 사용된 단어 ‘accompaniment (동행)’은 함께 걷는다는 것의 시적인 의미, 즉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여정의 상징을 포착하지 못한다. 이 시 구절의 아름다움은 ‘선행(先行, 앞서 일어난 일)’과 ‘선행(善行, 좋은 행위)’ 두 가지 의미를 연상시키는 동음이의어 ‘선행’에 있다. 그래서 이 시 구절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을지라도’ 또는 ‘걸어가는 것이 곧 선행(善行)을 의미 하지 않더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그런 것을 언제까지고 반복해보고 싶다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한 참가자가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해 이런 프로젝트를 하고 나는 나를 위해 여기에 참여하는 게 좋다”고 말했을 때처럼 기분 좋은 순간도 있었다. 이 말은 이 프로젝트가 그들을 도와주거나 힘을 실어주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님을 그 참가자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이 작업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공동 학습(co-learning)’에 관한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참가자들을 <불확실한 학교>의 중심으로서 존중했다. 그리고 두 달 여 간의 프로그램 기간 동안 참가자, 협력자, 팀원,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차이가 점점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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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 이상 예외는 없다

나는 <불확실한 학교>를 장애에 대한 차별이 없는 공간으로 상상했다. 우리는 포괄적이고 수용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리를 둘러싼 온실의 바깥에서, 나는 한국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장애인에 대한 문화적 편견과 미세한 적대감을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참가자들과 이러한 사안에 관해 오래 토론을 했다. “장애는 사회적 구성물인가, 물질적 실재인가?” 이 질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잠재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기능(ability)은 인간이 기존 사회 구조 안에서 어떻게 ‘일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다. 한편 역량(capability)은 인간이 ‘일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잠재성(potentiality)은 집단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기능, 역량, 잠재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탱한다. 예술은 이러한 지지 구조물의 축에서 눈에 띄는 역할을 한다. 예술은 사회적 포용을 가능하게 하는 접착제이다. 예술은 공존의 시학으로 이야기한다. 즉 예술은 번역 불가능한 것을 번역해낸다.

<불확실한 학교>는 일시적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실험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참가자들과 작업하기를 바라며, 다음 기회가 허락되면 그 때는 이들을 교사로, 협력자로 초청할 계획이다. 어쩌면 2016년 여름의 <불확실한 학교>는 앞으로 다른 맥락에서 좀 더 긴 시간을 가지고 이 같은 모임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한 준비였을 것이다. 우리의 작업은 포용에 대한 요구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되지 않을 때 완성될 것이다. 앞으로 할 일이 훨씬 더 많다.

 

[1]“unlearn”, 『미리엄-웹스터』, http://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unlearn

[2]크리스틴 선 킴(Christine Sun Kim)의 ‘작가의 말’에서 인용, http://www.wnewhouseawards.com/christinekim.html

[3] 장 뤽 낭시 저, 박준상 번역, 『무위의 공동체 (La Communauté désœuvrée)』, 고양: 인간사랑, 2010년, 79쪽.

[4]애스트라 테일러 저, 한상석 번역, 『불온한 산책자: 8인의 철학자, 철학이 사라진 시대를 성찰하다(Examined Life: Excursions with Contemporary Thinkers)』, 서울: 이후, 2012년, 316쪽.

[5] 셀린 콘도렐리, 게빈 웨이드, 제임스 랭던, 『지지 구조물(Support Structures)』, 베를린: 슈테른베르그 출판사, 2009년, 29쪽.

[6]“불확실한 학교”, 미디어시티서울 2016, http://mediacityseoul.kr/2016/ko/project/uncertainty-school-participant-exhibition-interdependence

[7] 주디스 버틀러 저, 조현준 번역, 『젠더 허물기(Undoing Gender)』,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15년, 44쪽.

[8] 심보선, 『눈앞에 없는 사람』,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11년, 26 쪽.

 

이 글은 SeMa 비엔날래 미디어시티 서울 2016 도록을 위해 쓰고 편집했다.

이 글을 번역하신 김정혜 님, 교정과 편집에 도움을 주신 고아침, 김보라, 서새롬, 아버지 그리고 미디어시티 서울 2016의 이성민, 박은혜, 이지원, 강유미, 길예경, 백지숙 님께 감사함을 표시한다. 

 

상호의존 Interdependence

전시기간 : 2016년 9월 28일 (수) ~ 11월 20일 (일)
오프닝 : 2016년 9월 28일 (수) 오후 7
장소: 북서울미술관 지하1층 커뮤니티갤러리

“작가와의 대화”
2016년 9월 28일 (수) 오후 7시 ~ 8

01_interdependence_1 01_interdependence_2 01_interdependence_7 〈불확실한 학교〉 참가자 전시 “상호의존”은 〈불확실한 학교〉 참가자들의 작품과 학교 프로그램의 과정을 소개한다.

〈불확실한 학교〉는 지난 두 달간 작가, 창작자, 예술 교육자, 활동가, 사회 복지사를 참가자로 초대해 총 15회의 워크숍과 공개 세미나를 진행했다. 서로 다른 감각과 언어를 사용하는 개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일시적이고 자율적인 배움의 공동체를 이뤘다.

우리는 주류의 소통방식을 질문하며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대화를 시도했다. 참가자 고유의 필요사항을 고려하고 해설보다는 통역에 집중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글은 질감을 띄고, 단단한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언어가 된다. 우리가 발견한 이 대화의 방식은 공동체 안의 다양성을 발현시키고 개인의 존엄성을 지탱해주는 구조다. 이와 같은 대화가 예외적인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당연한 삶의 조건이 될 때, 우리는 각자가 가진 편견을 탈학습하고 타인에게 사려 깊은 손을 내밀 수 있게 될 것이다.

“상호의존”은 우리의 불완전한 고유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포용할 가능성에 관한 전시이다. 또한, 불확실한 학교 강사와 참가자, 협력 작가들이 서로에게 보여준 ‘급진적 호혜’를 관람객과 나누는 자리이다. 상호의존의 잠재력은 각자가 혼자였을 때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공동의 역량으로 가능해지는 데에 있다.

참여작가
고재필, 곽규섭, 김성원, 김예림, 김은설, 김인경, 김현우, 박현성, 박범, 육건우, 이민희, 이영익, 이진솔, 이유진, 정도운, 조영은, 전은경

협력작가
라야, 김보라, 김태경, 소목장세미, 유원선, 정유미

협력기관
로사이드
잠실창작스튜디오
틈사이로

기획
최태윤

진행
박은혜, 서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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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certainty School participant exhibition, Interdependence, 2016, Commissioned by SeMA Biennale Mediacity Seoul 2016

Time: September 28 (Wednesday) – November 20 (Sunday)
Opening: September 28 (Wednesday) 7pm
Venue: Community Gallery of Buk-Seoul Museum of Art

Program: “Conversation with the artists”
September 28 (Wednesday)  7pm~8pm

Uncertainty School participant exhibition Interdependence presents the participants’ works and progress of the program.

Uncertainty School invited artists, creators, art educators, activists, and social workers as participants and organized 15 workshops and public seminars. Individuals who use different senses and languages came together to form a temporary and autonomous community of learning.

We questioned the mainstream method of communication and attempted to have an inclusive conversation. Considering the specific needs of the participants, we translated before interpreting their message. Through this process, text becomes texture, concrete language becomes living and fluid language. These ways of conversation are the support structure which enables diversity within the community and preserves the dignity of individuals. When this conversation is no longer an exception, but a natural condition, we can unlearn our biases and reach out to others with generosity.

Interdependence is an exhibition about the beauty of our distinct incompleteness and the possibility to embrace it. It’s also a chance to share the ‘radical reciprocity’ of the Uncertainty School’s lecturers, participants and collaborating artists with the visitors. Interdependence is the potentiality, transforming somethings that are deemed impossible as an individual, into a possibility with collective capacity.

Exhibiting artists
Jaephil Ko, Kyuseob Kwak, Sungwon Kim, Yerim Kim, Eunseol Kim, Inkyung Kim, Hyunwoo Kim, Hyeonseong Park, Bum Park, Gun-woo Yook, Minhee Lee, Youngik Lee, Jinsoul Lee, Yujin Lee, Dowoon Jeong, Young-eun Cho, Eunkyoung Jeon

Collaborating artists
Raya, Small studio Semi, Taekyung Kim, Yumi Jung, Bora Kim, Wonsun Yoo

Partnering Organizations
Raw+side, Jamsil Art Space, Tumsairo

Planning
Taeyoon Choi

Production
Saerom Suh, Grac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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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준비-1 Exhibition preparation-1

불확실한 학교 참가자 전시 상호의존 준비 회의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  커뮤니티 갤러리
09.12, 7:00pm — 9:00pm

| 최태윤

지지구조물에 관한 책을 소개하고 싶어요. 두 큐레이터가 몇 년에 걸쳐서 진행한 리서치와 전시, 퍼포먼스의 기록이에요. 제목은 『서포트 스트럭쳐 Support Structures예요. 본문 글 중에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어요.

“Structure is the syntax of transformation”
“구조는 변화의 문법이다”

우리가 배운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문법과 규칙을 지키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한편 세상을 바꾸거나, 예술 제도를 바꾸거나,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꾸기 위해서는 변화의 문법을 구사해야 합니다.   

“The relational system latent in any object”
“어떠한 사물에도 잠복해있는 관계적 시스템”

제가 구조물에 관심을 갖는건 그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에요. 지금 우리가 함께하는 <불확실한 학교>라는 프로젝트도 학교라는 구조를 빌려서 얘기하는 것이고, 그 일시적 구조를 통해서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은 ‘포괄성inclusivity’이에요. 조금 더 다양한 사람을 위한 미술 교육, 더 다양한 사람들을 환영하는 미술관이 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해요. 그것은 아주 구체적인 케이스들, 예를 들어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나, 한 공동체만을 위한 그런 예외적인 특수한 상황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변화의 문법을 구사함으로써 더 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어요.

“Support structures are set up not to modify a given phenomena or an individual occurrence, but to intervene at the level of their determinants”
“지지 구조물들은 주어진 현상이나 개별적인 상황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정요인의 단계에 개입하는 것이다”

‘결정요인’이라 함은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지기 이전을 얘기하는 거죠. 예를 들어 미술관에는 누가 올 수 있는가?, 예술 교육은 누굴 위한 것인가?, 영화는 누굴 위한 것인가? 결정을 하기 전의 근본적인 시작점을 가르키는 거예요. 한 예로 농인 친구가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데 (모국어로 만들어진 영화의 경우) 자막을 제공하는 영화관이 흔하지 않기 때문에 영화관에 가기 쉽지 않다고 했어요. 사람들이 언제부터 들을 수 있어야만 영화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또 미술이 꼭 시각이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저는 누구를 위한 예술을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언제나 해요. 저는 일단 저 자신을 위해서 하고요. 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해요. 자신이 없는 예술은 관객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주 가까이에 있는 공동체를 위해서 작업을 할 때 가장 진솔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자신의 공동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They are affecting the conditions of possibilities for those to occur in the first place”
“그리고 그 지지구조물들은 그 상황이 애초에 발생할 가능성, 그 조건에 영향을 준다”

사실 창작 활동을 한다는 게 굉장히 특수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거잖아요. 한 사람이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걸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고, 그것들은 고유의 한계를 포함하고 있죠. 우리가 <불확실한 학교>에서 하는 것은 그 조건들이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apacity   

우리가 만들 전시의 주제인 ‘상호의존’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어요. 상호의존이라는 지지구조물에는 능력, 역량 그리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능력’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물리적으로 할 수 있음을 뜻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결과만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한편 ‘역량’은 의지가 있는 행동이에요. 자신이 선택을 해서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움직이거나 선택하는 것이죠. 결정권이 굉장히 중요하죠. 그래서 능력만을 중시하는 예술이 아닌, 그 역량을 존중해주는 예술과 예술교육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확실한 학교>에서는 잠재력을 탐구해요. ‘잠재력’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해본다는 것, 답이 없는 것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와 <불확실한 학교>를 같이 준비하는 우리 팀이 리드하는 역할은 오늘까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참가자분들과 같이 만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참가자의 역량과 능력을 존중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상태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예술의 잠재력은 창작자 자신만이 알고 있고, 그걸 존중하기 때문에 저는 제가 중간에 있는 사람, 어떠한 지지구조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잠재력은 상당히 정치적인 가능성을 담고 있어요. 저는 이렇게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예술 교육, 전시, 행사, 공공시설 등이 당연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자 통역, 수화 통역, 접근성 보장 등이 당연시 되고 있지 않잖아요. 뭐든 싸워서 취해야 하고 예외를 만들어야 하죠. 우리가 함께 만들 전시는 같이 꿈을 꿀 수 있는 미래이고, 그게 가능한 잠재력이 있는 미래인데, 그런 걸 두 달간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있는 거죠.

김보라

| 김보라 

작년에 태윤 씨가 진행한 <우리가 세운 벽을 탈(脫)학습하기>라는 워크숍에 참여했었는데요. 저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되는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로 참여했었어요. 그래도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을 그 안에서 찾았던 것 같고, 관계 속에서 찾았던 것 같아요. 이번에도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뭘 하면 좋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로 참여하고 있는데요. 확정되어있지 않은 것들 속에서, 관계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고 싶어요. 그래서 여러분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일단은 지난번 태윤 씨가 했던 워크숍에서 나왔던 말들을 정리하고 기록한 것들을 예쁘게 만드는 일(편집)을 했었거든요. 이번에도 그런 일을 도와드리려고 하는데, 그거 말고도 제가 뭘 더 할 수 있을지 저도 이제부터 찾아야 할 것 같아요.

| 김라야

저는 영상 기록 맡고 있는 라야입니다. 이번에 여러분들이 전시하시는 모습도 제가 찍을 거고요. 오늘 어떤 것들을 만들고 싶으신지 얘기를 듣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왔어요.

lightonthew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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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경
제가 만든 코드가 예뻐 보이는 순간이 있어요. 여러분이 배우신 것 중에 반복문이 있잖아요. 그 반복문에 반복문을 또 해보고 하다 보면 어떤 상황에 예쁜 것이 만들어지더라고요. 손으로 그렸다면 이런 걸 생각할 수 없었을 텐데, 코드로 작업을 하다 보니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의 것을 볼 수가 있게 된 거죠.

평소에는 데이터 시각화 작업을 주로 해왔어요. 이건 세월호 사건 이후에 만든 건데요. 해양사고 데이터들을 지도 위에 뿌려서 만든 거예요. 실제 어디서 사고가 많이 나고 어떤 이유로 발생하는지에 대해 작업한 건데, 지금은 이런 작업을 계속하고 있진 않아요. 정보를 보여주는 도구나 기술의 측면에서 작업을 해왔는데, 사람들은 이런 걸 보지 않잖아요. 내가 만들고 싶은 것만 만들어서는 사람들이나,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는 뭐지? 정보는 어떤 개념으로 나뉘지?’하는 관점에서 다시 접근하고 있어요.

stuckyi-codetype.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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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미


사람들이 선택하거나 판단을 할 때 남에 의해서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를 비롯한 사람들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관점에서 선택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데이터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게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데이터 시각화를 시작했고요.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들을 잘 정리하고 구조화해서 보여주고 싶고, 그게 제삼자들에게도 유용했으면 해요.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인데, 인터넷에 ‘대안 생리대’ 관련한 정보가 흩어져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흩어진 정보를 모아 아카이빙하는 사이트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세월호 사건을 정리하는 타임라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획한 적도 있고요. 이렇게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웹에 잘 정리해서 전달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서 기반, 기술적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stuckyi-codetype.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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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규섭

<키티와 튤립>은 고양이 캐릭터 ‘키티’, 튤립 캐릭터 ‘튤립’을 각각 주인공으로하여 애프터 이펙트로 작업 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제 1화 <친구들의 만남>

  • 내 색연필은 주황색이야
  • 응?
  • 춤을 추고 있어
  • 정말?
  • 어?
  • 키티도 춤을 추고 있어
  • 준모야,
  • 키티가 네가 쓴 글을 읽고 있지”

에드워드 호퍼 그림,
고양이,
봄날은 간다,
봄 풍경,
물총새,
서울숲 풍경,
빈센트 반 고흐,
모자 쓴 고흐 등은 모두 그림판 및 포토샵을 이용해서 그린 그림들로서 멋진 작품들입니다.

blog.naver.com/menn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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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은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서는 자연환경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풍경도 한국과 완전히 정반대이다 보니 외부에 있는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됐지만, 오히려 저 자신을 바라보는 그런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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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진

사람마다 보는 시야가 다르잖아요. 예를 들면, 제가 소리가 없는 공간에 살고 있고, 다른 사람은 소리가 들리는 공간에 살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색이 없는 공간에 살고 있잖아요. 각자 보는 시야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공간들이 충돌하거나, (발생하는) 연결고리를 이 전시의 콘셉트로 잡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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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희

저는 다양하게 음악을 들었어요. 그 소리에 제 무의식적인 상처가 녹아나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전 ‘어둠 속에서도 빛이 있다’라는 말을 좋아하고 공감합니다. 제 어둠 안의 빛, 희망을 찾는 작업을 앞으로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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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건우

천을 가지고 흙 물에다가 담갔다가 꺼내서 형태를 만들어 가마 안에 넣었어요. 천은 다 타서 없어지고 형태만 남는 거예요. 어쩌면 추상적인 과정인데, 하다 보니 제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잘 안 들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한테 상처를 받을까 봐 자기방어 같은 게 있었나 봐요. 그게 겉으로 나온 거예요.

제가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수업하면서 느끼는 게 많아요. 잘 듣지 못해도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작업하는 방향이 바뀔 것 같아요. 제가 방금 보여드린 작품은 당시 제 안에 있는 뭔가가 닫혀 있는 것 같지만, 앞으로 작업을 한다면 조금 열려있는 작업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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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익

이 작업은 풍경을 전체적으로 압축시켰어요. 바로 알아채기가 힘들 만큼요.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치이다 보니까 도시로부터의 압박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저는 한때 디자인 회사에 일한 적이 있었어요. 높은 곳 , 예를 들면 산이나 높은 빌딩에 올라가면 도시로부터 벗어난 듯한 느낌을 자주 느꼈고, 그 기분이 도시의 기묘한 양면성이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그림마다 사람들이 있는 걸 보실 수 있어요. 대부분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무언극을 펼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 무언극을 하는 걸 보고 있거나, 그 무언극에 관심 없어 하며 딴 곳을 바라보고 있거나 해요. 그리고 도시 위에서 부유하듯 그린 것은 직장생활 때 주변과의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에요. 사람들은 도시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더군요. 예를 들면 휴가를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물으면 자신의 상황에서 거리가 먼 곳, 유럽이라든가 동남아라든가 그런 곳이라고 대답해요. 그런데 휴가에서 돌아오면 도시에 다시 압도 당하는 아이러니함이 있죠. 이를 사람들의 무언극과 몸짓의 결합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어요.

제가 청각장애인이다 보니까, 건청인들하고 대화할 때는 필담과 구화로 대화해요. 대화할 때는 항상 입 모양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항시 얼굴에서 떼지 못하다 보니까 얘기 나눌 때마다 표정의 변화가 자연스레 제 눈에 들어오게 돼요 . 그러다 보니 얼굴에서 떠오르는 표정과 눈빛을 읽으며 상대가 지금 어떻고, 어떤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근데 그렇게 보더라도 그 사람을 완전히 파악한 게 아니잖아요. 자신이 놓친 또 다른 면을 다른 누군가가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속내를 들킬까 봐 감추려고 하거나 연기를 하려는 사람도 있겠죠. 이처럼 자신을 어떻게든 드러내지 않으려는 게 보였어요. 그걸 유리 위의 영상과 투과된 영상, 그리고 투과된 영상에 가려진 초상화로 나타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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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목장 세미, 유혜미 

저는 ‘소목장 세미’라는 1인 목공방을 하고 있는 유혜미라고 하는데요. 직업이 그냥 목수예요. 전시를 위한 L자, T자 가벽 구조물을 나무로 짜줄 사람이 필요해서 태윤 씨가 저에게 연락을 주셨고요. 전에 태윤 씨와 크리스틴 선 킴Christine Sun Kim이라는 작가가 소리 관련한 퍼포먼스(<미래 보증>)를 할 때 나무로 풍경만드는 작업을 도와주기도 했어요.

사실 저는 원래 가구를 배운 건 아니고, 조소과를 나왔어요. 그런데 작가로 산다는 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면 제일 좋을 텐데 우리나라는 예술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잖아요. 그렇게 조소과를 졸업해서 방황하다가 돈도 없으니까 월세를 같이 낸다고 학생 3명이 같이 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한 친구가 잘 때마다 제 배에 머리를 자꾸 올리는 거예요. 그게 싫진 않았지만 이참에 2층 침대를 만들어볼까, 해서 작업실에서 겁도 없이 만들기 시작했어요. 조소과를 나왔으니까 어디서 주워들은 거로 어떻게 뚝딱뚝딱 2층 침대를 만들어 집에 가져오게 된 거죠. 그걸 보고 친구들이 사고 싶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돈을 벌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오늘 느꼈던 건, 같이 작업을 하기로 해서 뭘 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딱 마주하니까 뭐랄까, 재밌을 것 같고요. 지금까지 일해온 방식대로 그냥 다이(대臺)를 짜고 적당하게 작업을 배치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직접 작가의 설명을 들으니까 굉장히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래요. 아까 그네나 시소 말씀하신 것을 듣고 여기를 스포츠 센터나 놀이동산처럼 만들면 굉장히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cargocollective.com/smallstudios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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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필, 로사이드 Rawside

‘로사이드’는 2008년도에 시작한 예술단체인데요. 저희와 활동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발달장애나 정신장애가 있는 분들이지만, 처음에 시작할 때 장애를 내세워서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이런 노트에 뭔가 계속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주변에서는 이런 걸 별로 신경 쓰지 않거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또 너무 많아서 버리기도 했던 작업들인데요. 그때 당시 이 단체를 시작했던 분들은 장애를 떠나서 너무 재밌다, 그리고 이런 작업을 사람들과 연계하고 알려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로사이드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저희와 활동하는 창작자분들을 ‘날 것의 창작자’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창작자분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하실 분들을 링크해드리고 있어요. 이 사람과 어떤 사람이 궁합이 잘 맞을지, 어떻게 했을 때 재밌는 작업이 나올지 판단해서 공동으로 작업할 수 있게 연결을 해주는 거죠. 저희는 이걸 ‘1대 1 아트링크’라고 해요. 교육처럼 비춰질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은 아니고요. 한 사람의 창작 협력자로서 함께하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한 사람을 오랫동안 지켜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사람(날 것의 창작자)이 뭘 할 것인지 예단하지 않고 바라보되 필요한 것들은 함께 발전시키는 거죠.

저희 창작자분들은 다 청년인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그래서 각자의 목표를 갖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모일 수 있는 공간, 같이 있는 것만으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느슨한 작업공간을 만들었어요. 또 바깥과 연결시키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전시나 예술 프로젝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창작자분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 이런 활동들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수입이 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작년부터 창작자들과 디자이너들의 협업을 통해 상품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잇-장:Link Market>이라는 마켓을 열어서 전시와 판매를 시작했는데요. 큰돈을 번다기보다 사람들과 연계하여 여러 상품도 만들어보고, 이러한 가능성을 알리는 것에 주력했어요. 그러면서 수입이 되든 안 되든 창작자분들도 노동의 한 과정에 소외되지 않고 같이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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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통역:  박은하,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audsc.org
진행: 최태윤, 서새롬
편집: 김보라
사진: 최태윤